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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사례

“이봐, 해보기나 했어?” 고(故) 정주영 회장의 기업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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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은 고(故) 정주영 회장이 별세한지 20년이 되는 해였다.

현대그룹의 초대 회장인 정주영 회장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인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2001년 당시 현대그룹의 가치는 30조 원이었다.

정 회장의 일대기와 기업가정신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계동사옥 집무실에서의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 (사진=현대차그룹)
 

1. 관습과 불확실성에 도전

나는 정주영 회장이 지닌 배짱(gut)을 지니지 못해서 직접 사업을 하지 못했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


“이봐, 해보기나 했어?” 정 회장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이것은 무조건 불확실성을 감당하면서 도전하라는 메시지가 아니다. ‘안 될 거야’라는 고정관념과 비관에 빠져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는 뜻이다.

기업가가 지나친 낙관의 오류를 범하면 이윤을 낼 수 없는 사업에 뛰어든다. 이는 사후에 재무제표 상의 ‘손실’로 돌아온다.

기업가는 낙관의 오류와 비관의 오류에 빠지기 쉽다. (사진=unsplash)
 

반면, 기업가가 지나친 비관의 오류를 범하면 성공할 수 있는 사업에도 뛰어들지 않는다. 이 경우 장부 상으로는 손실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이윤을 얻을 수 있는 사업적 기회를 잃은 것이다. 경제학적 관점에 따르면 이것은 굉장한 손실에 해당한다.

정 회장은 그저 고정된 선입견에 따라 사업의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을 가장 경계했다. 

정 회장은 이윤의 기회를 기민하게 발견했다. 그는 특유의 배짱으로 전례없는 일들을 시도했다. 그리고 불확실성을 감당하며 시도한 행동을 통해 배웠다.

1968년에 현대건설은 당시 아무도 하지 않던 고속도로 공사를 시작했다. 이때 건설된 경부고속도로는 서울과 부산의 거리를 4시간 30분으로 단축하여 우리나라의 도시화·현대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경부고속도로는 '국토의 대동맥'이라 불린다.
 

1976년에 정 회장은 오일 쇼크 후 오일달러가 넘치는 중동건설 현장에 가서 주베일 항만 공사 계약을 성사시켰다.

주베일 항만은 파도가 넘실거리는 수심 30m 바다였다. 그곳에 400톤의 재킷을 정확하게 설치하는 것은 당시 기술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현대건설은 정확한 위치에 재킷을 박고 미리 제작된 빔을 설치했다. 

이러한 성공은 다른 국내 기업들까지 비관의 오류로부터 벗어나 적극적으로 해당 산업에 나서도록 만들었다. 이는 곧 한국의 경제 발전으로 이어졌다.

정 회장은 “꼭 하고 싶은 일, 꼭 해야만 하는 동기가 충만한 일을 생각한다면, 누구든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다”며 “생각의 씨앗을 키우고, 많이 보고 듣는 자세를 견지하면 고정관념에 매이지 않고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주베일 산업항의 모습 (사진=현대건설 홈페이지)
 

2.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다하는 최선

정 회장은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정신으로 집요하게 목표를 성취했다.

‘조선소 담판’은 정주영 회장의 가장 유명한 일화다. 

1970년대에 대한민국은 중화학 공업을 육성하기 위해 포항제철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었다. 조선소에 필요한 철을 국가적 차원에서 생산하고 있던 것이었다.

정 회장은 국내 상황을 파악하고 울산광역시 동구 방어진 일대에 조선소를 설립하고자 했다. 하지만 당시 현대그룹에게는 자본과 기술이 없었다. 국내 은행에서도 그 정도의 돈을 빌릴 수 없었다.

1970년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부지 (사진=ⓒ울산시)
 

정 회장은 차관과 기술협력을 얻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그는 영국의 조선기술 기업 애플도어 회장과 기술협약을 맺었다.

애플도어 회장은 “버클레이 은행을 설득해 차관을 얻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정 회장은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그에게 보여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국은 1,800년도부터 배를 만들었지만 우리는 1,500년도부터 이런 배를 만들었다. 그 기술은 우리가 그대로 갖고 있다.”

정 회장의 담대함에 애플도어사의 회장은 버클레이 은행에 추천서를 써주고 자리를 주선해주었다. 

1970년대 당시 500원 지폐 뒷면에 거북선이 그려져 있다. (사진=한국은행)
 

버클레이 은행에 간 정 회장은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영국에서는 돈을 빌려주려면 수출보증 기구의 승인이 있어야 했는데 승인 조건이 매우 까다로웠던 것이다.

수출보증 기구의 총재는 “배를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계약서를 가져오면 대출을 승인을 해주겠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조선소를 만들 울산 백사장 사진 하나를 들고 배를 살 수 있는 사람을 찾아다녔다. 결국 그는 그리스 선박왕 리바노스에게 26만 톤 급 유조선 2척 수주에 성공했다. 정 회장은 그 소식을 수출보증 기구에 알려 차관을 받았다.

1972년에 현대그룹은 울산광역시 60만평 부지에 현대중공업 조선소를 지을 수 있었다. 현대는 리바노스에게 5년 후 전달하기로 한 선박을 2년 6개월 만에 성공적으로 만들었다.

현재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 전경 (사진=현대중공업 홈페이지)
 

정주영 회장은 1986년 중앙대 특강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생활해 나가는 모든 분야에 있어서 다 어려운 게 있지 쉬운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어려운 것은 우리가 다 극복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오늘 풀지 못한 일을 내일 다시 생각해서 풀 수 있고 오늘 진 일은 내일 다시 ‘이길 수 있는 구상’을 할 수 있다.”

“나는 우리의 생활과 우리나라의 장래는 전쟁만 없으면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여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영원히 발전해 나갈거라고 확신을 하고 산다.”

1986년 중앙대 특강을 하고 있는 고(故) 정주영 회장
 

3. 경쟁으로 내몰아 ‘진짜 일꾼’ 키웠다

결국은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을 키워내기 위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당장 저 사람을 믿고 못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저 사람을 훈련시키고 독려하면 믿을 수 있는 ‘진짜 일꾼’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진정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고(故) 정주영 회장-

사람이란 일종의 불확실성이 있는 존재다. 정 회장은 직원을 무턱대고 믿지 않았다. 대신 ‘진짜 일꾼’으로 길러내는 과정을 거쳐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불확실성을 제거했다.

정주영 회장은 직원들을 경쟁 현장에 내몰아 '진짜 일꾼'으로 성장시켰다. (사진=정주영 사이버 박물관)
 

그는 직원들을 시장경쟁 현장에 내모는 방식으로 성장시켰다. 혹독한 경쟁과정을 이겨내야 진정한 경쟁력이 생긴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힘닿는 대로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점검하고 독려했다. 필요하다면 직원들에게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현대의 성공을 함께했던 중역들은 모두 정 회장으로부터 야단을 맞으며 성장한 사람들이었다.

그는 “비바람을 맞고 자란 자연산 채소라야 비바람을 차단한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채소에서 나지 않는 향기와 맛을 풍기듯, 혹독한 경쟁을 이겨낸 사람은 벌써 얼굴이나 일하는 자세가 다르다”고 강조했다.

고(故) 정주영 회장이 현대중공업에서 직원들과 어울리고 있다. (사진=아산 정주영 닷컴)
 

정 회장은 직원의 성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회사는 단순히 월급을 주는 곳이어서는 안 됩니다. 직원들을 성장시키고 발전시켜서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나 자신이 혹독한 시련과 경험 속에서 성장해왔고, 그랬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배우고, 시련 속에서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성공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나는 직원들도 혹독한 과정을 거쳐서 더욱 빠르게, 그리고 더욱 많이 발전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글/신가희 학생기자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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