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노사피엔스 직원을 뽑아야 하니
[사례뉴스=신광훈 기자] 어느 중견 기업의 사내 변호사로 근무하는 예전 동료 변호사에게 대학생 면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놀란 적이 있다.
캐나다에서는 요즘 대학 졸업생들 면접을 볼 때 면접관 앞에서 전화를 시킨다고 한다. 피자 주문을 면접관 앞에서 직접 전화로 하게 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피자 주문하는 게 어떻게 면접이 될까?
친구의 설명인즉, 친구 사이에도 전화보다는 문자를 더 많이 주고 받는 것이 요즘 대학생이고 음식 주문도 대부분 인터넷으로 하다보니, 생각보다 많은 대학 졸업자들이 사람에게 직접 말로 이야기 하는 것을 어려워 한다고 한다. 어떤 메뉴가 있는지 편안하게 화면으로 보고 고르다보니, 전화로 사람에게 메뉴를 물어보고, 가격을 물어보고, 결정을 내리고, 주문을 해야하는 상황 자체를 불안해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화 공포증이라는 말도 있단다. 그런데, 이런 친구들은 회사에서 원만한 대인 관계를 가지기가 어렵기에 이렇게 전화 주문을 시켜 보고 걸러낸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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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럴까, 싶었다. 그래서 집에 와서 딸에게 물었다. 딸이 말하기를 친구 중에도 이런 증상이 심한 사람이 있고, 본인에게도 조금 그런 경향이 있다고 한다. 특히 팬데믹 이후에는 기계에 말하거나 기계를 통해 말하는 것이 편하지, 쌍방간에 대화를 주고 받아야 하는 상황은 모르는 사람과는 그닥 편안하지 않다고 했다.
나도 오랫동안 타이핑만 하다가 보니 손글씨를 쓰기가 많이 힘들어졌지만, 문자로만 의사소통을 하다가 전화가 힘들어 진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문자로는 감정을 전할 수가 없으니 대화하는 것처럼 깊은 의사소통은 안 되리라 싶어 걱정스러웠다.
아무래도 그래서는 조직에서 개인적인 관계 맺기가 힘들지 않을까? 감정이 서로 오고 가야 개인적인 관계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말로도 풀기 힘든 관계를 문자질로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어느 날 딸과 함께 내 친구를 기다리면서 카톡을 보냈다. “기다리고 있어.” 그런데, 옆에서 보던 딸이 질색을 한다. 그렇게 쓰면 어떻게 하느냐고, 왜 그렇게 쓰냐고. 뭐가 이상한가? 하고 다시 보았는데, 이상할 것이 없다. 철자법도, 띄어쓰기도 틀리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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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마침표 '.'였다. 마침표를 찍으니 내 딸에게는 기다리다가 지쳐서 화가 난 상태를 전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모티콘은 없지만, 문자에서 화난 감정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냥 도착해 있다는 정보를 보내려는 것이면 마침표 없이 쓰거나 굳이 쓰려면 다른 종류의 기호, 예를 들어 기다리고 있어~~ 와 같이 쓰라는 것이 요지였다.
마침표, 쉼표, 느낌표, 물음표 처럼 그저 문법에 맞춰 의미 없이 사용하던 기호들이 이제 점점 더 세밀하고 명확한 의미를 가지기 시작해서 문맥에 따라 이모티콘의 역할을 하다니! 늘어난 문자 메시지와 더불어 단순한 문장 기호들이 이제는 세밀하게 감정을 전하는 수단으로 진화한 것이었다.
이 정도면 문자 메시지를 대화와 유사한 수준으로 발전시킨 것이니, “문자는 정 없어”, “편지 백통보다 전화 한 통이 나아” 와 같이 문자를 목소리와 차별하고, 대화가 적어짐을 염려하던 기존 세대의 걱정은 기우가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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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기준이 하나 더 생기는 건 아닐까. 소리로 의사를 전달하면 동물, 문자로 전달하면 인간. 인간이 문자에서도 감정을 읽어낼 수 있는 종으로 진화하고 있다면 안타깝게도 나는 멸종 위기종이다.
다행히도 아직은 사장에게 결정권이 있으니, 피자를 주문해 보라고 하고 면접에서 후보를 걸러낼 수 있지만, 그 권한에 기대어 계속 멸종 위기종으로 남아 있어야 할 지, 아니면 포노사피엔스들의 새로운 문자 대화 방식을 빨리 습득해야 할 지 고민이다 되는 세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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