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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칼럼

시에서 소설을 읽고 소설에서 시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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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두 번 거울 보는 남자

 

시를 읽는 거는 곰탕을 끓이는 과정을 닮았다. 곰탕을 끓일 때에 사골을 넣고 처음 끓인 곰국은 너무 기름이 많고 탁해서 먹기가 적당하지 않다. 첫 번째 끓인 곰국을 비우고 두 번째 세 번째 끓인 곰국이 첫 번째 곰국보다 훨씬 맑고 고소하며 감칠맛이 있다.

시도 처음 읽을 때는 무슨 말인지 잘 알 수가 없다. 글자 그대로 읽으면 시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여 오해하기 딱이다. 두 번 세 번은 읽어야 글이 정제되어 나의 감정에 스며듦을 느낄 수 있다.

하나의 시를 여러 번 반복하여 읽으면 마른오징어를 씹을 때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씹으면 씹을수록 스며 나오는 짭조름한 마른오징어의  특유한 맛과 함께 느낄 수 있는 육질의 느낌은 생선이나 스테이크에서 느끼는 고기 맛과는 다르다.

씹으면 씹을수록 그 맛은 변해간다. 시도 반복하여 읽다 보면 의미가 계속하여 변화하며 새롭게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시가 걸어오는 말을 따라가다 보면 그 말은 이야기가 되고 소설이 된다.  시에는 소설이 담겨 있다.

가장 짧은 문학 장르 중에  하나인 시는 커다란 물건을 압축해 놓은 진공포장과 같다. 물건의 운반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진공 방식으로 압축해 놓은 포장을 뜯으면 포장 안의 내용물이 빅뱅 하여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다.

시는 시인이 독자에게 보내는 진공 포장된 글이다. 시인이 보낸 진공 포장을 뜯으면 시인이 하고자 했던 무수히 많은 말의 의미가 터져 나와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것은 시인이 시를 쓰기 위해 고민한 많은 생각들 일수도 있고 시인의 생각이 나의 생각과 랑데부하여 생겨난 새로운 창조물일 수도 있다.

시인은 본래 소설을 쓰고 있었는지 모른다. 너무나 긴 자신의 소설을 모두 쓸 수 없어서 압축하고 압축하여 짧은 시로 표현하였을지 모른다. 그 압축된 이야기를 풀어서 읽고 즐기고 이해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시가 쓰인다. 길고 긴 이야기를 모두 말로 전달할 수 없다. 소설 속의 긴 이야기를 짧게 전하고 싶어 요약하다 보면 시를 쓰고 있다.

한 사람의 삶을 소설에 비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살아온 삶을 글로 쓰면 책 한 권은 충분히 넘을 거야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사실이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데 어찌 책 한 권이 안 되겠는가. 한 권의 책 속에 담길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또한 압축된 시도 있다. 한 사람의 압축된 시는 그 사람의 행동과 표정에서 읽을 수 있다. 현재의 행동과 표정은 그 사람의 이야기가 응축된 시이다. 그리고 응축된 시에서 그 사람의 소설을 읽을 수 있다.

무심코 하는 행동과 표정은 그 사람이 살아온 오랜 기간 동안에 걸쳐서 만들어진 자신 만의 시가 된다. 아름다운 시를 쓰기 위해서는 삶을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 나이가 들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도 의미가 같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하루에 두 번 거울을 본다.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한 번 보고 저녁에 퇴근하여 한 번 본다. 거울을 보면서 나의 표정과 몸가짐을 살펴본다. 밖에 나가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시를 보여주기 위하여 나의 표정과 몸가짐을 살펴본다. 이미 만들어진 나의 삶의 결과로 생긴 시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이미 쓰인 시를 다듬을 수는 있기 때문이다.

저녁에 퇴근하여 하루 동안 나의 시가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갖는다. 아침에 출근을 할 때 찍어 놓은 셀카와 비교한다면 좀 더 과학적인 비교가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오늘 하루 만난 사람들과 갈등은 없었는지 그 갈등을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하였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아침 출근할 때의 표정보다 좋아졌다면 오늘 하루는 정말 좋은 성공적인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해도 좋을 듯하다. 

아침 출근 때의 표정보다 나빠졌다면 하루의 생활을 돌아보며 내일의 표정을 만들기 위하여 충분한 휴식과 관리를 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듯하다. 

글/안선영 필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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