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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례

존스홉킨스 출신 정헌재 의사, 최종 꿈? “우리나라 모든 의료인에게 환자안전 대면 강의를 들려드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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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많은 의료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헌재 좋은의료연구소’
‘건강을 보호하고 생명을 구하는 일—수백만 명을 한꺼번에’라는 문구를 보고 존스홉킨스에 가기로 결정한 정헌재 의사
보건사업전담 공중보건의사 복무 당시 전국 152명 보건사업 전담의 연락+설문조사해 논문 작성
Sommer Scholar(쏨머 장학생)+WHO(세계보건기구) 장학생으로 존스홉킨스 경영학 석사·보건학 석·박사 졸업
안전의 기본은 “우리는 인간이고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아니, 실수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정헌재 좋은의료연구소 대표이자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글로벌 보건학과 겸임교수로 활약 중인 정헌재 의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헌재 의사는 세계보건기구가 선발하여 양성한 환자 안전 전문가로서,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는 존스홉킨스에서 환자 안전과 양질의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선두에서 활동 해오고 있다.

존스홉킨스 대학 ‘환자 안전’는 2000년대 들어서 급부상한 의료계 이슈로 ‘더 안전한 병원을 만들고자 과학적 방법을 이용하는 의학’의 한 분야다. 지난 10여 년간 세계보건기구(WHO)를 필두로 의료의 안전과 질을 높이기 위해 국제적인 투자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환자 안전에 대한 활약을 담은 3분여의 다큐멘터리(존스홉킨스 제작)는 세계 68개국 7,000개의 고등교육기관이 가입한 ‘교육발전 및 지원 협의회(CASE)’에서 주는 ‘최고의 원(Circle of Excellence)’ 금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한림대 의대를 졸업하고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보건학 석·박사(MPH, DrPH), 경영학 석사(MBA)를 받았다. 존스홉킨스에서 연구와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존스홉킨스와 하버드, 서울대병원, 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 성모병원, 국립암센터 등 다수의 의료기관과 학회에서 환자의 안전 및 의료의 질에 대한 강의와 자문을 해왔다. 의료기관 평가인증원의 연구자문 위원, 환자안전학회의 국제협력 이사로도 활약 했었다.

정헌재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현재의 길을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어떤 가치로 환자 안전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아래는 정헌재 대표 인터뷰 내용이다.

Q. 정헌재 좋은의료연구소와 대표님에 대한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정헌재 좋은의료연구소’는 CQI 한국 챕터(지부) 이름입니다. CQI(The Care Quality Institute)는 지난 2009년 12월 존스 홉킨스에서 일하던 저와 제 동료들이 의료에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The Care Quality Research Group(CQRG)을 발족했습니다.

이후 하버드와 MIT 등의 의료·공학·경영 전문가들이 가세해 CQRG 분석력에 전문 컨설팅 펌의 실질적 문제 해결 경험을 갖춘 The Care Quality Consulting Group(CQCG)가 창설됩니다. 

이 두 그룹은 자연스럽게 연합하게 되고, CQI(The Care Quality Institute)라는 이름으로 의료 혁신을 이끌게 됩니다. CQ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세계 최상위 기관을 거쳐온 멤버들의 재능과 그들이 가진 풍부한 경험의 조합에서 찾을 수 있으며, 보건 의료 영역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간 CQI와 함께 일했던 국제적 기관이라면 단연 존스 홉킨스와 하버드를 들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캐나다 환자안전 연구소, 영국 환자안전기관, 타이완 의료기관 인증원, 세계보건기구 (WHO), 세계 환자 안전 운동, 미국 환자안전협회 등과 함께 의료의 발전을 앞당기고 있습니다. 수조원이 넘는 병원 건설 프로젝트와 같은 경영 지향적인 프로젝트 경험도 풍부합니다. 

CQI에서는 아프리카나 아세안 등 아직 의료 질에 대해 많은 노력을 할 수 없는 국가들에 대한 무료 활동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발족부터 지금까지 CQ 리더로 앞서 소개한 모든 프로젝트들에 참여해왔고, CQI 한국 챕터 명은 제 이름을 따 “정헌재 좋은의료연구소”라 부르고 있습니다. 의료의 질과 환자 안전 분야에서는 제가 꽤 많이 알려져 있는 터라 이름을 넣게 됐습니다.

Q. 대표님께서는 한림대학교 의학 학사에 이어 세계 최고 의대로 꼽히는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보건대학원 보건학 및 경영학 석사 그리고 의료정책 및 경영 박사를 졸업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존스홉킨스로 가게 된 과정이 궁금하고 존스홉킨스에서의 유학 생활은 어땠는지도 궁금합니다.

“어느 날 강가를 걷고 있었는데, 비명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사람이 강에 빠져 떠내려가고 있었다. 뛰어들어 건져내어 심폐소생술을 해서 겨우 살려 놨는데, 또 비명이 들리더라. 다시 뛰어들어 또 살려내고…그렇게…사람들을 살려내는데 정신을 빼앗기고 있다 보니, 저위 상류에서 누가 사람들을 물에 밀어 넣고 있는지를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다.”

의대 졸업 무렵 수업 시간에 예방의학을 소개해 준 내용입니다. 당시 이 내용들을 들으면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가진 바람직한 의사의 모습은 병원에서 환자 한 명 한 명씩을 열심히 진료하는 것이었는데 ‘저위 상류에서 누가 사람들을 물에 밀어 넣고 있는지’에서 사람을 밀어 넣는 게 누굴까에 대한 내용은 제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존스홉킨스 웹사이트에 들어가게 됐고 웹사이트 첫 화면에 “Protecting Health, Saving Lives—Millions at a Time.”(건강을 보호하고 생명을 구하는 일—수백만 명을 한꺼번에)라는 문구를 본 순간 심장이 멎어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1분도 안 걸려서 존스홉킨스에 가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됐습니다.

존스홉킨스에 가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때 당시 시기가 당장은 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대한민국 남자 의사는 다 군의관 혹은 공중보건 의사로 병역 의무를 마쳐야 하기에 저 또한 공중보건 의사로 지원을 하게 됐습니다.

그때가 2002년이었는데 당시 ‘보건사업전담 공중보건의사’를 각 시, 도에 한 명씩 배치하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었고 시험을 보고 부모님이 사시던 춘천 강원도청으로 발령을 받게 됐습니다.

‘보건사업전담 공중보건의사’가 새로 생긴 자리다 보니 할 일이 정해지지 않아서 발령받은 이후 6개월 동안 제가 했던 일은 정수기 물통 갈아 끼우는 것과 복사·제본이었습니다.

당시 ‘도대체 이게 뭐 하는건가’ 싶어 다른 지역의 상황을 좀 알아보고 전국 152명 보건사업 전담의들에게 일일이 다 연락을 해서 설문조사를 하고 논문을 작성했습니다.

다른 지역도 더하면 더했지 다 저와 하는 일이 비슷했습니다. 전국적으로 얼마나 큰 의료자원 낭비가 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고 제가 작성했던 논문이 보건행정 학회지에 발표가 됐는데 유명해져 학회 초청을 받고 복지부 강연을 하게 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후 저는 여러 가지 국책사업들에 참여하게 됐고 다른 공중보건의사 선생님들과는 아주 많이 다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보건사업전담 공중보건의사의 삶을 살면서도 존스홉킨스에서 공부하겠다는 꿈은 놓치지 않기 위해 근무 시간 전후로 제가 일하던 강원도청 근처 도서관에서 유학 준비를 해서 시험을 봤고 보건학 석사과정에 Sommer Scholar(쏨머 장학생)으로 선발됐습니다. 

그렇게 공중보건 의사를 마친 이후 2005년 7월 초 미국으로 가려고 했으나 6월 말 아버지께서 폐암 말기 진단을 받게 되어 존스홉킨스에 아버지의 상황과 함께 못 가게 됐다는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근데 존스홉킨스에서는 “너 자리 비워 둔다. 아버지 간병 잘 하고, 건너올 수 있을 상황이 되면 그때 와라.”라는 편지를 보내줬습니다.

덕분에 11개월 동안 아버지 병간호를 하고, 장례를 치르고 한 달 후인 2006년 7월, 예정보다 한 해 늦게 미국에 건너가 석사과정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보건학 석사 과정만 공부하려고 갔었지만 미국에 온 지 24일째 되는 날 ‘역학(epidemiology)’과정 실습시간 때 주어진 문제를 한 조의 한 명씩 나가서 발표를 하는 수업이었는데 10번 문항이 아주 악명 높은 고난이도 문제였는데 그 문제를 사각형 두 개를 그리고 그 안에서 직선 두 개를 그어 넣는 것만으로 답을 찾아낼 수 있게 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당시 실습수업을 진행했던 교수님과 다른 학생들은 제가 문제를 푸는 모습을 보고 다들 충격을 받았고 그게 학교 전체에 소문이 나 학장님까지 알게 됐습니다.

학장님께서 저를 한 번 만나자고 하시면서 보건학 석사와 경영학 석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복수 전공 프로그램을 제안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불러서 박사도 같이 하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줬습니다. 그렇게 석사 2개와 박시 1개를 쏨머 스칼라 지원을 받으며 WHO(세계보건기구) 장학생으로도 뽑혀 지원받아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쏨머 장학생은 단순히 학비·생활비 대주는 프로그램이 아닌 거의 매주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워싱턴의 자리한 미국 정치가들에게 연설이나 인터뷰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곳에 데리고 가서 트레이닝 시켜줬습니다.

학교에서도 Best of the Best라 불리는 집단이었으니까 궁극의 리더십 양성 프로그램이었습니다. WHO 장학생도 6명밖에 안 뽑았었는데 감사하게 뽑히게 되어 지원을 받게 됐습니다.

Q. 존스홉긴스에서 경영학 석사, 보건학 석·박사 졸업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주로 어떤 걸 배우셨는지 궁금하고 한국에서 적용해 볼 만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보건학 박사를 받은 분야는 의료정책 및 관리입니다. 제가 거쳐온 경영학 석사는 통상적인 경영 대학원과 비슷하며 의료 부분에 조금 더 무게를 실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존스홉킨스 보건학 석사 과정이야 워낙에 유명하니까 마음만 먹으면 보건 의료에 관해 배우고 싶은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곳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 같은 경우 박사 학위 논문이 백만 건 이상 의료사고 케이스들을 분석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규모도 엄청나고 굉장히 파격적인 논문이었습니다. 10여 년 전 우리나라에도 미국처럼 의료과실 자료를 모으는 시스템을 갖추자는 움직임이 있었고, 제가 그 자문 역할을 맡았습니다.

자료가 모여야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방향을 잡을 수 있는데 덕분에 시스템이 잘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첫 단추가 잘 꿰어진 것이지요.

석사 시절엔 우리나라 병원들 초대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지난 2013년엔 ‘병원 사용설명서’라고 의료사고를 피할 수 있는 법을 담은(환자·의사 모두를 위한) 책을 출판해 지금까지도 잘 읽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개정판 준비 중입니다.

아쉬운 것은 환자안전(의료사고 방지)에 대해 저처럼 학위가 있거나 WHO 등의 공인된 곳에서 트레이닝을 받은 분들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Q. 대표님께서는 공부하던 당시 새벽에 병원 회진을 돌고 연구실에 들어가 막차가 끊길 때까지 공부하는 삶을 사셨다고 들었습니다. 힘든 상황 가운데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대표님만의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제 원동력은 어머니였습니다. 전 외아들이었고, 유학 떠나기 직전 딱 한 달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까, 어머니는 한 달 사이에 가족을 모두 잃은 셈이 된 거죠.

적어도 저는 그렇게 해석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시간 낭비하고 있으면 어머니께 너무 죄송스럽더라고요. ‘하나라도 더 배워야겠다’라는 생각을 늘 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매일 전화 한 통씩은 드렸습니다.

Q.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대표님께서는 최고의 성적을 받아 박사 과정을 끝내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모든 걸 어떻게 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시간관리의 비결이 따로 있으실까요?

아, 이건 명백하게 답할 수 있는데, 우선 전 시간관리 비결이 없습니다. 그리고 미국 교육 시스템에서 최고의 성적은 제일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낸 사람에게, 또 멋진 리더십을 보여준 사람에게 주어지지, 수업 시간에 필기해 둔 것 잘 외는 사람에게 수여되지 않아요. 

전 다행히 감사하게도 아이디어와 리더십 쪽엔 타고난 면이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미디어 트레이닝 프로그램(인터뷰 받는 법이나 연설하는 법 가르치는) 가면 그쪽 사람들이 “우리 목표는 여러분을 헌재처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라는 말을 대놓고 했었으니까요. 그쪽엔 검증이 된 것이었고. 

그 외에 우리가 ‘공부’라 부르는 도서관에 앉아서 하는 전형적인 공부는 우리나라에서 의대 졸업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것이어서 별로 힘든 줄 몰랐습니다. 의대 들어갈 때도 수능 성적은 제가 제일 높았습니다.

전 아이디어 낼 때 주로 산책을 합니다. 미국에서도 자취방에서 제 연구실까지 한 시간 반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서 퇴근을 하며 이런저런 새로운 생각들을 떠올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요즘도 논문을 쓰거나 할 때는, 산책을 주로 해요. 길을 걸으며 내용과 구조를 짜고 연구실 가서 컴퓨터 켜고 글 쓰는 그런 식입니다.   

Q. 현재 Biometrics & Biostatistics International Journal Editor in Chief,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글로벌 보건학과 겸임교수로 활약 중이신데 각각 어떤 역할을 맡고 계신지 궁금하며 어떤 가치를 가지고 일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BBIJ EIC는 학술지의 편집장 역할이니까, 주로 하는 일은 제출받은 원고들 출판 가부 결정입니다. 편집위원회가 있으니까 알아서 잘 돌아가긴 하지만, 편집장이 직접 결정을 내려 직접 답신 편지를 보내줘야 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이 있습니다. 

가치라면 ‘좋은 논문을 세상에 내어 놓을 창구를 만들어 준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다행히 제가 대학원 다닐 때 통계를 그 분야 박사 하는 친구들에게 그리 밀리지 않을 정도로 공부했었기 때문에 BBIJ의 편집장을 맡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연세대학교 글로벌 보건학과 교수는 비교적 최근 맡은 일인데, 크게 두 가지 일을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Teaching 과 Project: 연대에 유학 온 외국 학생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 친구들 가르치는 일과 정부 과제 등을 수주해서 진행하는 일입니다. 

이번 여름에는 이종욱 펠로우십이라고 굉장히 유명한 프로그램의 인스트럭터를 맡아서 강의를 했었는데 무척 보람 있었습니다.

제가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것도 굉장히 좋아하지만, 학교라는 세팅에서 사람들 가르치는데도 큰 매력을 느끼는가 봅니다. 석·박사 학생들 지도·멘토링 하는 것도 행복합니다.

정리하면 CQI, BBIJ 쪽에선 일종의 짜릿함을 얻을 기회가 많고, 교수로서는 소명이랄까 그런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Q. 대표님께서 작성하신 ‘존스홉킨스 환자 안전 전문가가 알려주는 병원 사용설명서’는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습니다. 책을 쓰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하고 베스트셀러가 된 소감과 책을 통해 무엇을 알리고 싶으셨습니까?

책을 쓴 것은 2012년이었습니다. 출판은 2013년 봄이었습니다. 제 전문분야가 의료의 질과 환자의 안전입니다. 석·박사 동안 우리나라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많은 강의를 했었습니다.

강의라는 것이 주로 병원 같은 의료기관에서 의료인들을 대상으로 하게 되는데(혹은, 우리나라에서는 국회에서도 했음), 어느 순간 깨닫게 된게 ‘이게 의료인들만 행동을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니다.

병원이 안전해지기 위해 무슨 노력들을 하고 있는지 환자가 알지 못하면, 결국 그 많은 노력들은 다 허사가 된다’라는 것이었어요. 

예를 들어 볼게요. 어느 병실에 나이 많은 기력 약한 할아버지가 입원을 하셨다고 치죠. 친구분들이 병문안을 오셨는데, 보니까 소변기가 병상 근처에 없고, 화장실 안에만 있는 거예요.

친구분은 환자분 편하시라고 소변기를 가져다 침대 옆에 가져다 놔 드렸고 친구분들이 다 가고 난 밤, 환자는 침대에서 떨어지는 낙상을 당해서 고관절에 골절을 입었습니다. 

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병원에서 왜 소변기를 침대 옆에 안 두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소변기가 눈에 띄는 곳에 있으면, 환자가 간호사나 보호자를 부르지 않고 혼자 힘으로 침대에서 내려와서 소변을 보려고 “시도”를 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다 넘어지는 사고가 생기기 십상이고. 낙상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소변기 통을 숨겨서 소변을 보려면 병원 직원을 호출해야만 하게 만든 거죠. 병원 직원들이 더 자주 와야 하더라도, 환자를 낙상으로부터 지켜내자는 논리가 숨어 있는 것이죠.

이렇게 환자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방어벽을 환자 스스로 무너뜨리는 경우가 너무 잦으니까, 그래서 책을 썼어요. 책 제목이 왜  “병원 사용 설명서”인지 이해되시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소식에는 무척 기뻤습니다. 더도 덜도 말고 딱 위에 적어 놓은 게 그 이유였어요.  제가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겐 이미 많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강의할 기회도 많고, 그래서 무언가를 가르쳐 드릴 기회가 꽤 있었거든요. 그런데 환자에게는 그럴 창구가 상대적으로 적었는데 그게 생긴 거니까요. 

Q. 언제부터 환자와 의료 안전에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특별히 환자 안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으실까요?

정말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제가 유학을 떠나던 2006년까지 전 단 한 번도 환자안전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그 단어를 입에서 꺼내는 게 금지되었다고 말하는 게 맞을 거예요.

왜냐면 당시까지만 해도 안전은 사고라는 단어를 연상시키고 따라서 환자안전은 ‘의료사고’를 얘기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다수였거든요.

제가 첫 방학으로 한국에 왔을 때 한 선배 의사가 제가 공부하는 분야를 물으시길래 환자 안전에 관심이 많다고 했더니 “네가 의사의 적이 되어 왔구나”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 경험이 오히려 제게 불을 붙였던 것 같아요. 너무나 큰 오해가 있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안전한 의료를 만들자는 것인데… 이거 누군가가 해야만 하겠구나. 그리고 그 유명한 문구가 떠올랐죠. ‘내가 아니면 누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

신기하게도 그때 세계보건기구에서 전 세계에서 6명의 환자안전 장학생을 뽑아 훈련을 시켰고, 저도 그중 한 명으로 선발되어서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었습니다. 그래서 존스 홉킨스 병원에서 실제 경험을 쌓으며, 세계 최대 규모로 시행되었던 감염예방 프로그램의 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기도 했었지요. 

Q. 대표님께서 인터뷰하신 내용 중에 의료 안전은 병원과 환자의 합작품이라는 말이 와닿았습니다. 당시 “환자는 단순히 치료를 받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의료진과 함께 팀이 되어 정보를 공유하고 치료 과정을 이해하는 능동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의료기관들도 환자 안전을 위한 교육과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말씀을 해주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시스템을 더 강화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환자와 보호자에게 미리 소변기는 화장실에 보관하고, 변을 보고 싶다면 반드시 벨을 눌러서 간호사나 간병인을 불러달라고 미리 얘기해 두었다면, 고관절 골절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말이죠. 지금까지 병원은 문제 해결방법을 찾아내려고 골몰해 왔고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답을 찾아내기도 했어요. 

그런데 바로 그 소변기 예에서처럼, 찾아낸 ‘답’을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제대로 알고 이해해야만 안전이 보장되는 경우가 대다수에요.

‘우리’ 모두는 ‘환자가 안전하게 치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서는 것’을 목표로 한 팀이 되어야만 해요. 그렇지 않으면, 애써 찾은 답은 그저 시간과 자원의 낭비로 귀결되고 말아요.

여기서 ‘우리’는 의료인, 환자, 그리고 환자의 보호자 모두를 포괄합니다. 

Q. 환자와 의료 안전을 위해 의료진들이 해야 될 일과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해야 될 일을 무엇입니까?

모든 것의 전제가 되는 명제랄까…안전의 기본은 “우리는 인간이고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아니, 실수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환자안전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한 게 2000년 무렵이었고, 그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 보고서의 제목이 바로 “인간은 실수를 한다 (To err is human)”였지요. 그 보고서에 의하면 매년 미국에서만 98,000명의 환자가 막을 수 있었던 의료사고로 사망한다고 해요. 이게 매일 점보 제트기 한 대씩 추락해서 탑승객이 모두 사망하는 상황과 맞먹는 정도의 위험이라는 것입니다.

저 보고서가 나오기 전까지 환자안전·의료과실 등은 그냥 전설처럼 들려오던 얘기일 뿐이었습니다. 사고의 발생 가능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스템을 안전하게 만들 이유가 없었어요. 하지만 저 보고서가 세상에 나온 후로 모든 것은 바뀌었죠.

이제 우리는 환자 대기실에 성별과 이름이 똑같은 사람이 두 명 앉아 있을 가능성을 받아들였고, 수술을 하고 가위를 뱃속에 둔 채 살을 꿔맬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제가 의료인에게 전하는 메시지 중 하나는 모든 게 완벽하다는 게 증명되기 전까지는 “무언가 반드시 잘못되어 있다고 가정하라”라는 게 있어요. 이 마음자세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수많은 위험한 상황을 안전하게 돌려놓을 수 있습니다.

환자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병원에서 당신을 귀찮게 만든다면 그건 안전 때문이기 때문이라는 걸 인식하고 협조해 달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피를 빼러 채혈실에 들어가면 팔에 주삿바늘을 찌르기 전에 환자에게 “성함과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시죠?”같은 질문을 해요. 

이렇게 물어봐 준다면 채혈 담당자는 당신의 안전을 지켜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일이 늘어나겠지만 이중으로 체크를 해서 다른 사람과 바뀔 상황을 막겠다는 거예요.

앞서 소개한 눈앞에서 치워버린 소변기 통도 그렇고, 무언가 ‘불편해’, ‘귀찮게 해’라는 생각이 들면 앞으론 ‘안전하겠구나’라 생각하시고 적극적으로 따라주시면 좋겠습니다. 

Q. 대표님께서는 존스홉킨스 총동문회 자랑스런 동문상 및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또한 수상했습니다. 이러한 상들을 수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제 경우엔 사명감이었어요. 원래 성격은 그리 부지런한 편은 못 되는데, 어떤 일을 할 사람이, 혹은 할 수 있는 사람이 저 밖에 없을 때는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 같아요. 첫 장관상은 공중보건의사 3년 복무를 마치며 받았는데, 제가 남들과는 굉장히 다른 공보의 생활을 했거든요. 

논문도 여러 편 쓰고, 의사회 용역 사업도 하고, 공립 노인치매요양병원 건립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그게 눈에 띄어서 수상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존스홉킨스 총동문회상은 박사학위를 받은 바로 다음 해에 받았는데. 

앞서 말씀드린 대로 세계 각국을 돌며 강의 및 연구활동을 하고, 무엇보다도 제 고국의 의료의 질과 환자 안전을 위해 했던 노력들이 홉킨스에도 알려져서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복지부 장관상은 우리나라 의료기관 평가 인증원이 자리를 잡는데 기여를 했다는 공로로 받게 되었는데요. 4년 동안 자문 위원으로 인증제에 깊숙이 관여한 게 복지부 장관님 눈에 띄었었나 봅니다. 

Q. 앞으로의 비전과 계획에 대해 궁금합니다.

우선은 맡고 있는 연세대의 교수 직함과 좋은의료연구소 대표 역할에 충실하도록 대학원생들 강의와 연구, 프로젝트들을 수행하는 데 가장 큰 비중을 둘 계획입니다. 해외 기관들과의 협업도 계속할 것입니다.

그리고 꼭 이루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의 모든 의료인에게 제 환자안전 강의를 대면 강의로 들려드리는 것이에요. 이건 몸이 아무리 피곤해도 꼭 하고 싶은데…그 강의가 굉장히 유명하거든요.

정말 한 번 듣고 나면 의료인들 태도가 바뀌는 그런 효과를 보아왔고. 유튜브나 줌 같은 온라인 매체로는 강의실 (강당)에서 다 같이 하나 되는 그런 감동을 느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일단 환자안전 강의 요청이 오면 무조건 맡는 편이에요. 

인생을 건 목표라면, 제가 필요없는 세상을 보는 것이랄까…쑥쓰럽지만 그런 꿈을 꾸어 봅니다. 의료가 완벽하게 안전해 진다면, 제가 하는 일은 필요 없을테니까요.

Q. 마지막으로 비즈니스와 일터에서 일하는 경영자와 리더들을 위해 격려나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경영자와 리더들은 이미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오셨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런 분들께 격려나 조언을 드린다는 건 너무 건방진 일인 것 같습니다.

딱 한 가지만 말씀드린다면, 어떤 일을 하시던지 그 일이 자신의 신념과 함께 하는 것이길 바랍니다. 제 경험에선, 그렇게 신념을 가지고 일할 수 있을 때는 별로 피곤하지도 않더군요.

여러분 모두의 건승을 빕니다. 저는 여러분께서 혹시나 편찮으셔서 병원을 찾게 되셨을 때 아무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안전한 병원을 만들어 놓겠습니다. 

좋은의료연구소 웹사이트를 통해 제게 연락하실 수 있습니다.

글/이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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