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산업에서 혁신 기업으로, 삼진어묵 박용준 대표의 '끈기 경영'
백화점, 온라인 유통, 글로벌 진출까지 어묵 소비 방식 재정의
박용준 대표 “어묵은 제품이 아닌 문화다”…100년 기업을 향한 비전
[사례뉴스=이은희 기자] "어묵으로 얼마나 더 할 수 있겠냐고요? 저는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더 단단해집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저는 어묵의 가능성을 믿습니다."
박용준 대표는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어묵의 가능성을 믿는 사람'이라 소개했다. 71년 된 가업을 잇고, 사양산업이라 불리던 어묵 시장을 다시 성장산업으로 바꾼 사람. 그리고 연 매출 1,000억 원의 벽을 넘기까지 '어묵 하나'로 버텨온 사람이다.
지금의 삼진어묵은 단순히 오래된 브랜드가 아니다. 유통 방식부터 고객 경험, 조직 체계, 글로벌 진출까지 모든 구조를 흔들어 만든 '혁신형 식품기업'으로 평가받는다. 그 전환의 중심에는 박 대표의 고집, 아니 '그릿'(끈기와 열정)이 있었다.

사양산업에서 다시 기회를 묻다
"매출 1,000억 원이라는 숫자는 상징입니다. 소비자들이 어묵을 다시 소비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니까요."
삼진어묵이 성장하기 전 어묵은 줄어드는 수요와 함께 업계 자체가 '사양산업'으로 취급받았다. 소비자의 외면은 매출 하락으로 이어졌고, 브랜드 생존 자체가 위태로웠다. 하지만 박용준 대표는 이 흐름을 거슬렀다. 어묵의 소비 방식, 유통 구조, 소비자의 경험 전반을 상상하고 실험했다.
"택배로 어묵을 받는다면, 온라인에서 골라 담는다면, 트레이에서 고르는 방식이면…? 저는 어묵이 어떻게 소비될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상상했습니다. 그리고 그 상상을 실제로 검증해 나갔습니다."
이런 실험과 도전은 결국 삼진어묵만의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을 탄생시켰다. 그 중심에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혁신이 있었다.
'어묵 베이커리'는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삼진어묵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어묵 베이커리'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 표현은 회사가 만든 것이 아니라 고객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것이다.
"저희는 '어묵 베이커리'라는 직관적인 언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삼진어묵베이커리'라고 써놓은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어요. 고객들이 스스로 '어묵 빵집', '어묵 베이커리'라고 부르기 시작한 겁니다."
삼진어묵은 전통시장 매장에서 트레이를 깔끔하게 바꾸고, 포스 시스템을 도입하고, 어묵 진열 방식을 정리하면서 점점 베이커리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빵처럼 어묵을 만들자'는 접근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보여지게 만든' 진화에 가까웠다.
"빵과 어묵은 만드는 방식이 꽤 유사합니다. 다만 판매 방식이 달랐던 거죠. 어묵도 백화점, 쇼핑몰, 카페 같은 공간에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못 해온 건 편견과 관성 때문이었습니다."

"어묵으로 문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삼진어묵의 슬로건은 '어묵으로 문화를 만들다'이다. 이 말은 단순한 마케팅 슬로건이 아니라, 박 대표가 지켜온 전략의 본질이다.
"무언가를 시도할 때, '이건 내 고집인가? 고객도 그렇게 말할까?'를 늘 고민합니다. 중요한 건 억지스럽지 않아야 한다는 거예요. 고객의 말과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도록 만들어야 진짜 문화가 되는 겁니다."
이 자연스러움에 대한 집착은 단순한 제품 개발을 넘어 브랜드 전체의 철학이 되었다. 고객이 '스며드는' 경험을 만들고, 그 경험이 자연스럽게 확산되도록 하는 것. 삼진어묵의 혁신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 방식은 글로벌 전략에도 이어졌다. 삼진어묵은 2017년 싱가포르 매장을 시작으로 해외 시장에 도전했고, 상온 보관이 가능한 어묵을 개발해 온라인 유통망에 올렸다. 실패를 피하는 대신, 작은 실패들을 통해 배워가며 확장해왔다.
"많은 자원을 한 번에 투입해 해외 진출을 선언했다면 리스크가 컸을 겁니다. 저희는 10년, 20년을 보고 갑니다. 작게 실행하고, 경험을 축적하고, 그에 맞는 제품을 새로 개발하며 나아갑니다."
사람이 늘면, 경영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삼진어묵은 현재 수백 명의 직원을 보유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박용준 대표는 "사람이 늘었다는 사실 자체보다, 조직의 운용 방식이 함께 변해야 했다는 점이 더 중요했다"고 말했다.
"5명일 때와 수백 명일 때 필요한 경영 방식은 전혀 다릅니다. 과거에는 모든 직원이 실행자였다면, 지금은 시스템과 보상, 중간관리자 역할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그는 외부에서 전문 경영인을 영입했고 지금도 전문경영인 체제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기준은 명확하다. 능력보다 '결'이다.
"단순히 일을 잘하느냐보다 방향이 맞는가, 장기적으로 함께할 수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저는 이것을 '결'이라고 표현하는데 회사와 개인의 방향성이 얼마나 맞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어묵이라는 하나의 품목으로
"다들 말합니다. 종합식품회사 하면 더 크지 않겠느냐고. 그런데 저는 어묵만 해도 충분히 무한합니다."
박 대표는 삼진어묵이 지금도 변화를 시도하는 이유는 '레드오션에서 경쟁하고 치고 박는 방식'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어묵을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보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어묵조차도 제대로 확장하지 못하면서 다른 품목으로 도망간다면, 결국은 똑같은 문제에 부딪힙니다. 저는 이 품목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만들 수 있다고 믿어요."
이런 집중력은 오히려 더 큰 확장성을 가져왔다. 한 가지에 집중하되 그 한 가지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전략이 삼진어묵의 핵심이다.
초불확실성 시대, 무엇을 믿을 것인가
마지막으로 박용준 대표는 요즘같이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에 기업이 꼭 지켜야 할 것은 철학이라고 강조한다.
"철학과 비전은 단순히 '컨설팅'으로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자기 업에 몰입하고, 버티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겁니다."
그가 말하는 비전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100년 된 식품 기업이 될 것, 그리고 어묵이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모습으로 소비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 비전이 분명하면 어떤 변화든 유연하게 맞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 걸어갈 수 있습니다."
"만약 10년 전의 나를 다시 만난다면, '고생하겠네'라고 할 겁니다. 이 길은 매일이 새롭고, 매일이 도전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길이기도 합니다."
박 대표는 어묵을 통해 시장을 확장했고, 문화를 만들었고, 기업의 존재 방식까지 바꿔놨다. 매일의 작은 도전들이 모여 지금의 삼진어묵을 만들었고, 앞으로도 그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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