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보다는 본질 - 강점이 빛나기 위한 조건
요즘은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강점 부각의 원리가 있다. 약점을 보완하는 데에 중점을 두지 말고 강점을 더 계발하는 데에 시간과 자원을 쓰라는 내용이다. 개인 뿐만 아니라 회사에도 이 이론이 적용된다.
하지만, 원리는 반만 옳다.
강점 하나로만 포장했을 때 수십 개의 강점이 있다고 홍보하는 것보다 판매 촉진 효과가 훨씬 좋았다는 사례는 넘쳐나니, 소수의 강점에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인 마케팅 정책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마케팅을 하기 전에 마케팅할 물건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강점에 집중하라는 원칙이 그 물건의 홍보나 포장이 아닌, 그 물건 자체에도 적용이 될까,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정말 지금이 내가, 내 회사가 강점에 집중해야 할 때일까?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내가 회사 생활을 시작하던 시기에는 입사 지원서에 “주량” 란이 있었다. 최소한 소주 1병 (그 당시 소주는 25도짜리)은 써야 서류 전형에서 탈락하는 일은 막을 수 있고, 안전하게 소주 2병은 쓰는 것이 좋다던 소문이 대학가에 퍼져있던 때다.
내가 입사한 회사의 전설이 우리 부서 과장님이셨다. 술을 전혀 못 하시는 분이셨는데, 입사하고 싶은 욕심에 주량을 소주 1병으로 적고 합격을 하셨단다. 물론 신입 사원 환영회 때 바로 들통이 났다. 일상에서 업무 능력은 매우 좋은 평가를 받으셨지만, 거짓말로 입사했다는 말이 돌았으니 마음은 편치 않으셨다.

그런데 이 분은 입사 후 매일 집에가서 반 잔, 한 잔, 두 잔 이렇게 쓰러질 때까지 소주를 드셨단다 - 주량을 늘이기 위해. 정말 매일 드셨는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노력하신 것은 확실한가 보다. 내가 입사했을 때 그 과장님의 주량은 정말로 한 병이었으니까. 부장님과 대리 선배들이 증언했던 내용이니 과장은 있을지언정 거짓은 아닐거다.
그 분은 이후 이름있는 다국적 기업으로 좋은 대우를 받고 이직하셨다.
약점이 있으면 강점을 드러낼 기회조차 없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주량을 계속 “0”으로 유지하셨다면 그 과장님은 아마도 강점을 보이실 기회조차 없었을 지 모른다. 낭중지추라고 하지만, 그건 일단 주머니까지는 도달한 송곳에게나 적용되는 말이다. 땅 속에 묻혀 있는 송곳에게 낭중지추라는 말은 쓸모가 없다.
거짓 주량을 적어 낸 것은 술을 못 마시는 그 과장님이 자신을 포장하기로 한 최선의 방책이었다. 술을 못 마신다는 약점을 1병이라는 거짓말로 포장했다. 하지만, 주량이 2병, 3병이라 할 지라도 업무 처리 능력이나 인간 관계 같은 기본기가 떨어졌다면, 아마도 그 분이 다국적 기업으로 스카우트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주량이 포장지라면, 업무 능력은 상품이다.

소수의 강점을 부각해서 나를, 내 회사를, 내 상품을, 내 서비스를 포장하는 건 좋은 전략일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포장으로 사용할 하나의 강점은 필수다. 하지만, 포장지는 포장지일 뿐이다. 우리는 포장지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물건을 팔아야 하니, 포장이 벗겨지고 나서 보여질 나를, 내 회사를, 내 상품을, 내 서비스를 다방면에서 평범한 수준으로 닦아 놓아야 한다.
진화의 아이콘으로 흔히 회자되는 것들이 있다. 기린의 목, 공작의 꼬리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사실 기린이나 공작을 이루는 대부분의 것들은 특별하지 않다. 기린의 눈이나 발, 공작의 심장이나 폐 등은 다른 것과 똑 같지는 않을지 몰라도 특별할 것 없는 눈이고, 발이고, 심장이고 폐다. 기린은 긴 목으로, 공작은 그 화려한 꼬리로 유명세를 타지만, 기린과 공작을 살리는 것은 다른 평범한 특징들이다.
긴 목을 가진 장님 기린이나, 화려한 깃을 가진 외발 공작이 살아남을 자리가 있을까?

평범한 것들을 갖추는 것도, 절대 쉽지 않다. 약점을 보완하여 평범함을 갖추는 데에도, 강점을 계발해서 비범함을 기르는 데에 못지 않은 자원이 소요된다. 그래도 약점에 집중해야 하는 것은, 약점을 보완하려는 집요한 노력이 있어야 비로소 평범해 질 수 있고, 그래야 나의 강점을, 뽀족한 송곳 끝을 보여줄 기회가 오기 때문이다.
약점을 덮어야 평범한 시작점에라도 서서 내 강점을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니, 오늘도 평범해지기 위한 노오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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