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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칼럼

식은 커피가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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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온정으로 살아가련다
 

커피머신에서 캡슐커피 한 잔을 내려놓고 글을 쓴다. 얼마 전에 네스프레소 커피머신을 구입한 후에는 그동안 애용하던 믹스커피를 끊고 캡슐커피를 즐겨 마시고 있다.

글을 쓸 때 옆에 커피 한 잔을 내려놓으면 커피 향이 기분을 가라 앉히면서 글을 쓸 분위기를 업 시켜 준다. 나는 옅은 커피를 좋아해서 커피 강도가 약한 솔레리오에 밀크를 약간 부어서 마신다.

커피를 내려서 한 모금 마시고 옆에 놓아둔 상태에서 글을 쓰는 데 집중하다 보니 커피가 다 식어 버렸다. 다 식어 버린 커피를 무슨 맛으로 먹나 하여 버리려고 하다가 한 모금 마셔 보았더니 따뜻할 때에는 느끼지 못하던 새로운 커피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오히려 뜨거울 때에는 느낄 수 없었던 쌉쌀한 커피 본연의 맛이 느껴진다.

커피를 바로 내렸을 때에는 커피의 뜨거움 때문에 커피 본래의 맛을 느끼기 어렵고 단지 뜨거운 커피에 데이지 않으려고 호호 불어가며 어떻게 해서 던 지 커피를 한 모금 마셔 보려고 애를 쓰는데 커피가 식은 상태에서는 어떠한 장애도 없이 커피의 맛을 음미할 수 있다.  

뜨거운 커피를 실수로 손에 쏟아서 몇 번 데어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식은 커피는 그런 염려가 없어서 더욱 편안하게 커피를 음미할 수 있어서 좋다.

BC(Before Covid) 8년에 꾸르실료에 다녀왔다. 벌써 12년 전 일이다. 참고로 꾸르실료는 천주교 신앙 체험 프로그램이다. 한동안 코로나로 프로그램이 쉬고 있었는데 다행히 내가 꾸르실료 체험을 할 당시에는 그런 걱정이 없는 시절이었다. 이제 우리의 삶이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진 것 같은 느낌이다.   

3박 4일의 꾸르실료 체험을 하는 과정에서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천국으로 향하는 길을 걸으면서 나의 영혼은 용광로 속의 쇳물처럼 뜨거워진 상태가 되었다. 꾸르실료 체험 프로그램을 모두 마치고 처음 밖으로 나오니 세상이 완전히 새롭게 보였다. 불과 4일 전에 내가 살던 곳인 이 세상이 모두 허망해 보였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완전히 무의미한 허깨비처럼 보였다.  

3박 4일간의 꾸르실료 체험을 마치고 성당으로 돌아오니 나보다 먼저 꾸르실료 체험을 하고 온 선배 꾸르실리스따님들이 환영회를 열어 주었다. 꾸르실료 체험에 들어가기 전에는 성당의 어떤 신자분이 꾸르실리스따인지 전혀 알지 못하였는데 환영회에 참석해 보니 성당에서 중요한 임무를 맡아서 봉사를 하는 열심인 신자분들 중 많은 분들이 선배 스따님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환영회에 참석한 분들이 모두 성당에서 매우 열심인 신자들 임에도 불구하고 주고받는 대화가 너무나도 타락한 세상에 물든 의미 없는 언행으로 보였다. 당시에 나는 완전히 속세의 모든 오물이 빠져나간 용광로 속의 순수한 쇳물 같은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였다. 내가 이대로 바로 천국으로 간다면 문제가 없겠으나 나는 다시 이 속세에서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 남겨져 있었다. 이렇게 뜨거운 상태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화상을 입혀서 그들을 상하게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때에 깨달은 것은 용광로의 쇳물은 그 자체로는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용광로의 쇳물은 앞으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나 그 자체로는 쓸 수가 없다. 용광로의 쇳물이 세상에서 쓸모를 갖기 위해서는 현재의 뜨거운 상태가 식어서 사람들에게 해를 주지 않는 상태가 되어야만 한다.

뜨거운 쇳물은 식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용도에 맞는 모습으로 제각기 변해가야 한다. 모든 생물의 생존에 필요한 물을 담아 놓을 주전자가 될 것인지 그 주전자에서 물을 받을 컵이 될 것인지 그 컵을 받칠 받침대가 될 것인지 아니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동차의 핵심 부품이 되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더라도 자동차의 구동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임무를 수행할 것인지 밖에서 마음껏 폼을 잡고 자랑하는 반짝반짝 빛나는 차체가 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것인지는 각자의 능력과 취향에 따라 결정하면 될 것이다.

우리의 삶에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젊을 때에 뜨거운 열정을 강조하지만 단지 뜨거운 열정 만으로 무엇이 되기는 쉽지 않다. 뜨거운 열정이 있기에 무엇이든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열정을 서서히 식히면서 이 사회에 필요한 자신의 역할로 굳어지면서 드디어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리 잡고 사회에 이바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젊을 때에 뜨거운 열정으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행동했던 시절을 지나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냉정하게 살아도 보았으나 이제는 나와 남을 함께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한 온정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너무 뜨거운 열정으로 본인의 의도와 달리 타인을 상하게 하는 실수를 피하고, 너무 차가운 냉정으로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얼어붙게 하지 말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따뜻한 온정이 자리 잡아야 한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따뜻한 온정이 가득한 세상이 살기 좋은 세상이며 우리가 추구해 가야 할 세상이다.

*본 기사는 사례뉴스 안선영 필진기자가 쓴 컬럼입니다. 안선영 필진기자는 (주)에스엠월드써미트 대표로 25여 년간 '대한민국 재활케어 대표쇼핑몰'(www.smworld.co.kr)을 경영하고 있으며, 환갑을 1년여 앞두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하여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는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입니다. 브런치스토리에 필명 '라트'로 활동하며 에세이, 소설, 시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글/안선영 필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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