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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사례

영혼이 정화되는 빨래가 전해주는 인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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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밖으로 드러난 외양에 의해서 구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모두의 내면에는 인간 본연의 심성이 시대와 세대와 계급을 초월해서 공통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은 아니겠는가. 엄마 뱃속에서 나와 탯줄을 자를 때 터트렸던 그 울음소리와도 같은 존엄하고 투명한 순수함 말이다. 이 공연에서는 바로 그러한 순수함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사연과 심정으로 가득 차 있다.
 

한국 창작뮤지컬 ‘빨래’만큼 좋은 작품이 또 있을까?
아무리 얘기하고 떠들고 소개해도 부족한 느낌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이 공연을 보게 할 수 있을까.
도대체 무엇이 내 시선과 호흡과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서울 변두리 산동네에 사람들이 살아간다. 어디에 사느냐가 한 사람의 인생을 가늠하는 평가의 기준이 된 지 오래다. 변두리와 산동네라는 말에는 이 사회의 변방과 주변인이라는 뜻으로 통용된다.

그곳에는 외국인 노동자와 비정규직 서점 직원과 동대문 옷가게를 운영하는 영세 상인과 구멍가게 주인 내외와 폐지를 주워 장애가 있는 딸을 부양하는 판잣집 주인 할매가 나온다.

그들은 중심으로 들어갈 희망보다는 경계 밖으로 사라져갈 것이라는 불안과 한숨과 절망 속에 살아간다. 그건 마치 땀에 절어 꼬질꼬질하게 내팽개쳐진 속옷이나 양말 같은 메타포와도 같다. 각박한 삶에 찌든 인생살이가 펼쳐지면서 제목인 ‘빨래’가 크게 다가온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기사)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이 공연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그토록 절박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공연을 몇 번이나 보면서 볼 때마다 흐느껴 울었다. 인간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밖으로 드러난 외양에 의해서 구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모두의 내면에는 인간 본연의 심성이 시대와 세대와 계급을 초월해서 공통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은 아니겠는가. 엄마 뱃속에서 나와 탯줄을 자를 때 터트렸던 그 울음소리와도 같은 존엄하고 투명한 순수함 말이다.

이 공연에서는 바로 그러한 순수함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사연과 심정으로 가득 차 있다. 위정자들과 힘이 있는 자들은 세상을 깨끗하게 하겠다며 청소를 하려고 한다. 홀로코스트와 킬링필드에서는 인종 청소와 반동분자에 대한 말살이 일어났고, 광주와 제주에서는 폭도들로 명명된 자들이 죽어서 쓸려나갔고, 홍콩과 인도와 미얀마에서는 지금도 시민들이 쓰레기처럼 분리되어 폐기되었다.

힘이 없는 자들이 폭거에 맞서 저항하고 투쟁하는 서사도 가슴을 뛰게 만든다. ‘레미제라블’의 '원데이모어 One Day More'에서의 혁명이나 ‘마리 앙투아네트’ 의 '더는 참지 않아'에서의 항거, 심지어는 ‘지킬앤하이드’의 'Alive'에서의 처벌 등 뮤지컬에는 그런 통쾌하고 후련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내게는 ‘빨래’에서 나오는 '슬플 땐 빨래를 해'와 같은 넘버와 장면들이 더 깊고 오랫동안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흔하고 식상한 예시지만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건 강풍이 아니라 햇볕이었던 것이다.

이 공연을 관람하던 당시 내 인생은 힘들고 아픈 날들이었다. 실밥이 튿어져 나간 셔츠처럼, 구멍이 나고 해진 바지처럼 심신이 비참하고 누추했다. 실패라는 괴물은 당한 사람의 영혼에서 자책감을 넘어 죄책감까지 소환한다. 나는 그때 나 자신을 폐기 처분하고 정신 개조라도 하고 싶었다. 처참하게 뭉개진 자존감을 다시 회복시켜준 것은 이 공연을 통해 접하게 된 순수함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어느 한 장면 버릴 것이 없는 공연에서 비교적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장면이 있다. 몽골에서 한국으로 돈 벌러 왔지만 몇 달째 임금체납에 고통받는 '솔롱고'라는 남자 주인공이 나온다. 또한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해서 어렵게 취직했지만, 사장의 갑질에 시달리는 여주인공 '나영'도 나온다.

[출처: 이미지투데이]

쉬는 날 옥상으로 빨래를 널러 나오는 '나영'의 모습을 처음 보던 순간 떨려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인사를 나눈 뒤 '솔롱고'는 혼자 남아 노래를 부른다. 제목이 '안녕'인데 순수함을 지닌 한 영혼이 다른 순수함에게 마음을 담아 전하는 메시지가 뭉클하다. 나는 오늘 이 넘버를 들으면서 순수함으로 일어섰던일, 그리고 지금도 일어서고 있는 모든 이들의 안녕을 기원하고 싶다.

글/김쾌대 필진기자

#고된일상#불안#한숨#절망#순수함#폭거#저항#자존감#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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