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가와 보스, 참모의 두 얼굴

리더와 팔로워 사이의 핵심 관계자인 참모의 두 얼굴
자신의 꿈을 대신 이루기 위해 리더를 선택한 조언자형 참모
자신의 꿈을 직접 이루기 위해 리더를 이용하는 보스형 참모

김승호 작가는 명저인 사장학개론에서 좋은 직원인 것 같지만 가장 경계해야 할 직원의 4가지 유형 중 첫번째로 참모를 자처하는 이를 꼽았다. 정확히는 사건을 확대하고 해결을 자처하는 유형으로 이들을 설명하며 '자신을 자칭 2인자 혹은 참모 역할에 만족한다며 자신을 제갈공명 형 참모로 규정하는 습관'이 있다고 하였다. 직장 생활을 하며 뜨끔한 문장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김승호 작가가 말한 일은 후흑학에 나오는 거전보과와 맥이 닿아있는 말이다. 거전보과를 비롯한 후흑은 다음에 따로 다뤄보기로 하고.

어찌되었던 회사를 운영하게 되면 이러한 '참모 호소인'들과 마주할 기회가 아주 많다. 그들은 직접 스스로 참모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대표에게 여러 전략적 제안을 하며 남들에게 대표의 참모로 보이게끔 부지불식간 이미지 메이킹을 하기도 한다. 물론 회사에서 대표가 참모라고 생각하는 인물이 아니라면 불행히도 참모 호소인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수십, 수백 가지의 얼굴을 지닐 수 밖에 없는 게 참모인데, 그 들중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 얼굴만 꼽으라면 '조언가'와 '보스'다.

첫번째로 조언가형 참모는 초한지의 장량이나 삼국지의 순욱, 명나라의 유기, 조선의 하륜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이들은 주군의 성공을 위해 모든 계책을 짜내도 일정 이상의 성과 보상을 탐하지는 않는다. 즉 '책사'로서 활약해도 '권신'으로서 나라의 권력을 손에 잡고 뒤흔들진 않는다.

물론 하륜은 부정부패한 인물이라는 평이 있지만 부를 탐했을지언정 권력을 탐하지 않았기에 태종에게 숙청당하지 않았다. 이들은 따로이 파벌을 두려하지 않고 주군의 권위에 기대어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유지한다.

두번째로 보스형 참모는 삼국지의 사마의, 명나라의 호유용, 조선의 한명회 등으로 대표되는 유형이다. 이들은 처음엔 주군의 성공이 목적인 것 처럼 보이지만 일인지하 만인지상을 꿈꾸는 이들이다. 더 나아가 왕위를 찬탈하는 이들도 이들이다.

이들은 책사에 머무르지 않고 권신으로서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넣기를 원한다. 이들은 자신을 따르는 파벌이 있으며 그 파벌을 중심으로 권력투쟁을 전개한다.

제갈량과 정도전은 어떤 사람들이냐고 물으면 저 둘의 성격을 모두 가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정확히는 조언자에서 보스로 변했다. 제갈량은 유비가 살아있을 땐 조언가였지만 유비가 죽은 뒤, 쇠락해가는 촉한에서 자연스레 권신이 되었다. 다른 이들과의 차이가 있다면 제갈량은 2인자의 권력을 오롯이 나라를 위해서 썼을 뿐, 개인의 영달에 쓰지 않았다.

동시대의 라이벌이라고 불리는 사마의와 아들들이 어린 황제들을 폐하고 종국에는 왕위를 찬탈한 것과 달리 제갈량은 오로지 유비의 탁고 아래, 유선과 촉한을 지키기 위해 모든 권력을 활용했다. 둘의 역사적 평가가 달라지는 중요한 갈림길이다.

정도전은 조선 건국 이전에는 아웃사이더였다. 이성계의 조언자였지만 권문세족이 아닌 그에게 세력이 있을 리 만무했다. 오히려 조선 건국을 전후해서는 조준의 공이 가장 높다고 평가 받고 있었다. 그러나 건국 후, 태조의 신뢰를 바탕으로 그는 남은, 심효생, 장지화 등 자신을 따르는 파벌을 중심으로 조선의 정치를 장악했다. 그리곤 태종에게 목숨을 잃는다. 그는 조언자일 때 나라를 세웠지만 파벌의 보스가 되자 목이 달아났다.

우리 회사의 참모가 어떤 사람인지 평가할 수 있는 것은 대표 밖에 없다. 정확히는 그들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 대표이다. 물론 일을 잘하고 인품이 좋으면 사람이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모인 사람이 파벌이 되고 세력이 되면 이익집단으로 변질될 수 밖에 없다.

이익집단 자체가 안좋은 것은 아니지만 사내의 이익집단은 사내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그들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조언자들과 열심히 일하는 직원을 몰아낸다. 이 과정에서 그들의 주된 칼로 쓰이는 것이 '성과 평가'이다. 그들은 성과 평가를 통해 합법적으로 본인들의 파벌 이외의 사람들을 가른다. 인품이 좋으면 무능력자가 되고 능력이 좋으면 인격파탄자로 만들곤 한다.

그렇다고 조언가형 참모가 무작정 좋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책임을 지지 않으려하며 대표가 말하는 것에 사사건건 반대할 확률이 더 높다. 그들은 또한 연봉이나 승진 등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물론 하륜이라면 연봉에는 움직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아니면 함께 하려 하지 않는다. 역사 속에서도 그들은 보통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목숨을 끊었다. 순욱이 대표적이다. 그는 한나라 부흥이라는 큰 뜻에 조조와 같이 하며 헌신을 다했지만 그가 다른 마음을 품고 있음이 명백해지자 음독자살하였다. 조조로서는 골때리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어차피 조직을 운영하다보면 이 사람, 저 사람 다 있을 수 밖에 없다. 다만 리스크를 줄이려면 나와 뜻이 맞는 조언가형 참모를 만나야하고 보스형 참모가 다른 생각을 품기 전에 알아채고 조치를 취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인사는 만사라지만 역시 리더는, 그리고 대표는 힘들고 외롭고 위대하다.

 

글/ 유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