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성현 기자
엠브레인 설문 "직장 만족도가 높을수록 결혼과 출산에 긍정적"
직장 만족도에 영향을 주는 가장 큰 요인은 연차와 유연근무제 등의 자유로운 사용
하지만 유연근무제가 기업의 생산성을 높일 지는 미지수
25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경기도 산하 한 재단의 대표에게 모든 직원이 ‘시차 출퇴근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라는 의견을 표명했다고 25일 밝혔는데, 최근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유연근무제를 시행하고 휴직과 휴가 사용이 자유로울수록 직장인들은 자신들의 직장에 만족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시차 출퇴근제는 육아 또는 출퇴근 편의를 위해 다른 사람과 시차를 두고 출퇴근하는 제도다. 예를 들면 출근 시간을 9시로 고정하는 게 아닌 7시부터 10시까지 시차를 두고, 퇴근 시간은 그에 맞춰 바뀌는 것이다.
재단 소속 박물관에서 근무하는 운영직 근로자 A씨는 일반직 직원과 시차 출퇴근제 사용이 제한적이라며 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행정이나 학예 연구를 하는 일반직과 달리 발권과 전시장 운영 등 박물관 관람객 대상 업무를 하는 운영직에는 시차 출퇴근제를 적용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며 A씨의 진정을 기각했다.
다만, 시설 운영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이 제도를 시행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할 것을 재단 대표에게 제안했다.
이렇듯 연차나 육아휴직의 사용에 대해 최근 많은 담론이 오가고 있는데, 지난 12일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에 의뢰해 20~39세 남녀 1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혼·출산 인식조사’에 따르면 직장 만족도가 높을수록 결혼과 출산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생활에 ‘만족한다’는 응답자 10명 중 7명(68.4%)은 “결혼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반면 직장에 ‘불만족한다’는 응답자 중에는 46.3%만 결혼을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출산 의향도 직장 만족도에 따라 달랐다. 직장에 만족하는 그룹에선 10명 중 6명(59.1%)이 출산 의향이 있었지만, 불만족 그룹에선 절반에 못 미치는 47.1%에 그쳤다.
직장 만족도를 높이는 요인으로는 ‘자유로운 연차 사용’이 70.8%(복수 응답)로 가장 많이 꼽혔다. ‘육아휴직 보장’(63.0%), ‘육아휴직 후 복귀 직원에 대한 공정한 대우’(56.9%), ‘기업의 출산·양육 복지 체계’(51.0%)가 뒤를 이었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은 “결혼·출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기 위해 기업문화를 개선하고 출산지원제도와 유연근무를 확대해 직장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원이 근무 시간, 근무 환경 등을 자율적으로 조절하는 유연근무제의 안착이 직장 만족도를 높여 출산을 유도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유연근무제는 시간선택제, 선택근무제, 원격근무제, 그리고 시차 출퇴근제 등으로 나뉜다. 다만 유연근무제는 법적 강제성이 없다 보니 대부분의 기업이 도입을 외면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2022년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업 중 유연근무제를 도입하지 않은 비율이 74.9%에 이른다. 특히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도입률이 낮았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49.3%, 30~99인은 35.4%, 10~29인은 32.1%, 10인 미만은 18.1%였다.
반면 외국계 기업은 상대적으로 유연근무제 도입에 적극적이다. 글로벌 기업 한국머크는 유연근무제를 적극 활용 중인데, 필수 회의를 제외하고 업무 회의 대부분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며, 직원들이 안정적으로 자녀 육아를 할 수 있도록 근무 시간표를 개인이 자율적으로 조직한다. 육아휴직으로 업무 공백 발생시 즉시 대체 인력을 배치할 수 있다고 한다.
정부는 워킹맘과 워킹파파가 육아할 수 있는 시간을 확대하기 위해 유연근무제 법제화에 나설 계획이다.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재택근무·시차출퇴근제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논의를 거쳐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기업 자체적으로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기업이 함께 나서 줄 것을 당부했다. 정부는 유연근무를 적극 도입하는 기업에 대해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리고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은 “근로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일·가정 양립을 실현할 수 있도록 기업이 앞장서야 하고 정부가 뒷받침해야 한다”며 “특히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기업에서는 유연근무제를 시행해서는 안된다. 유연 근무도 적합한 직무가 있다. 적합한 직무로는 독립적이고 개별적이거나, 스스로 업무계획을 세우고 자율적으로 업무 관리를 할 수 있는 직무여야 한다. 또 동료 혹은 고객과의 대면접촉이 거의 없거나 높은 수준의 보안을 요구하면 안 되는 등 많은 제약이 따른다.
그리고 뉴욕 타임스의 조사에 따르면 유연 근무 형태 중 하나인 재택근무가 한국에서는 월평균 1.6일로 세계 최하위 수준이었다고 발표했는데, 이유에 대해 전문가는 주건 환경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좁은 아파트에서 여러 가족 및 구성원과 함께 생활해 인구 밀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에서는 집에서 업무 생산성을 높이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사무실에 복귀하는 것이다. 또한 세계은행은 우리나라가 타 선진국에 비해 GDP 대비 서비스 산업의 비중이 낮고, 기획재정부에서는 우리나라의 서비스산업의 노동생산성이 낮다고 각각 2021년과 2019년 발표했다. 서비스 직종은 고객과의 대면접촉이 필수적이기에 생산성을 높이려면 직장에 출근해야 한다는 해석이다.
유연근무제를 실시하면 실제로 생산성이 높아질 지에 대한 제고도 필요하다. IPSOS의 조사에 따르면 유연 근무를 실시했을 때 정상 업무 시간 외 근무 시간이 늘어났고, 이는 전체 근무시간의 약 30% 증가라는 결과로 나타난다. 그에 반해 생산성은 약 8%~19% 하락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유연 근무는 직원 간 소통을 어렵게 만들기에 궁극적으로는 긍정적인 조직 문화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리하면, 평균적으로 유연근무제 시행 비율이 높은 영미권은 1970년대부터 이에 관심을 가졌고, 그에 따라 제도의 체계가 잘 잡혀 있다. 우리나라는 그에 비해 지정학적으로도, 정책적으로도 유연근무제가 어색한 상황이다. 또 유연근무가 무조건적인 생산성 상승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경영자들은 자기 사업체의 근무 체계 유연화에 대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시행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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