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트링겐, 영화 상영부터 영화제 개최까지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어 화제
일환 대표 "우리 행보가 예술계에 새로움을 부여하기를 바란다"
최근 SNS의 발달로 온라인 창구에서 장르를 막론하고 젊은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선보이고, 이에 따라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예술가 집단들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영화 분야도 마찬가지인데, 단순히 영화를 제작하고 상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외부 영화를 수급해 작은 영화제를 진행하거나 학술적 목적으로 사람들을 모으기도 한다.
사례뉴스에서는 최근 영화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로트링겐(Lothringen)' 일환 대표를 인터뷰했다. 그들은 작년 'ABBFF 병영영화제'의 첫 행사를 성황리에 마쳤고, 이외에도 여러 영화 상영회를 진행하고 있다. 모 영화감독은 이들을 두고 '한국 영화의 무서운 아이들'이라고 칭하기도 하는 등 그들의 적극적인 행보에 여러 시선이 쏠리고 있다.
아래는 로트링겐 일환 대표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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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로트링겐과 대표님에 관해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일환(활동명)이라고 합니다. 저는 로트링겐을 운영하며 영화를 만드는 영화 예술가이자, ‘ABBFF 병영영화제’를 운영하는 프로그래머이기도 합니다. 로트링겐은 영화 예술가들로 이루어진 조직입니다. 서로 영화 제작을 돕고, 자주적 형태로 상영회도 주기적으로 개최하고 있습니다.
Q2. 우선 현재 진행 중이신 ‘자크 리베트 전작전’ 행사가 시네필(‘영화 애호가’ 의미) 사이에서 큰 화제입니다. 영화 역사에 확실한 족적을 남겼지만, 접근성이 떨어져 감상이 쉽지 않던 감독의 작품을 상영했기 때문 같은데요, 상영회 개최 소감 한마디와 이를 개최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작년 1월부터 학교 상영관에서 매주 영화를 함께 보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은 주로 극장 환경이 아니라면 감상이 어려운 실험영화였고, 그렇게 일 년간 백 편이 조금 넘게 상영했습니다. 이번 행사 이전에는 상영을 적극적으로 홍보하지는 않았습니다. 영화 예술가들로 구성된 로트링겐 내부 인원들의 교육 목적이 가장 컸으니까요.
제 개인적으로 현시점 국내의 시네필 문화 자체에 큰 애정은 없지만, 그 문화를 구성하는 개개인을 향한 사랑은 큽니다. 디지털 세대의 시네필들은 그 이전보다 더 심원하게 확장하며 영화를 향유한다고 생각합니다. 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영화제에서 유명 감독의 실험영화를 상영한다고 하면 상영관이 거의 채워지지 않았다는 경험이 부지기수였는데, 같은 영화를 재작년에서 상영했을 때는 예매가 매진되었고 만석에 준하는 인원이 상영관을 채웠습니다. 디지털 플랫폼이 일상화되자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이 도달할 수 있는 정보의 영역은 자명하게 넓어졌습니다. 이들이 훗날 만들거나 프로그래밍하게 될 영화들로부터 희망을 감지하고는 합니다.
같은 이유에서, 자크 리베트의 모든 극영화를 이 자장 속에 있는 사람들과 공유하게 되어 행복합니다. 저 또한 그의 작품들을 매우 보고 싶기도 했구요. 이번 기회가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교육적으로 건전한 영향을 주리라 믿습니다.
Q3. 학생과 교육이라는 키워드가 흥미로운데요, 자크 리베트의 영화가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적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자크 리베트의 영화 세계는 80년대 이후로 흥미롭게 변화하기 때문에 그의 교육학을 명료히 요약하는 것은 저에게 힘든 일입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제 견해를 말씀드리자면, 리베트의 영화들은 “영화 프로덕션(제작 환경)을 구성하는 아이디어가 영화 내의 아이디어로 연동되는 체계”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완성되어 상영되는 영화 자체뿐만 아니라 이를 만들기 위한 제작 과정 자체가 너무나 유려하고, 그 유동적인 체계들이 영화의 매 씬에서 각기 다른 아이디어로 변환되어 드러납니다. 과정과 결과가 모두 아름다우며 이들 양자가 상호 교류하는 창작물은 어느 분야든 놀라운 경지라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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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다음 질문은 영화 산업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학생들처럼 자본이 적은 상태에서 영화를 만드는 상황과 연관하여 최근 영상 업계에서 가장 떠오르는 키워드가 AI입니다. 대표님은 AI를 영화에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추상화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데 있어서 AI는 흥미로워 보입니다. 노이즈 사운드를 만드는 것처럼 언어의 규칙을 초월한 형식을 개발하는 데 있어 뛰어난 역량이 있다고 봅니다. 어느 지점부터 AI가 발생시키는 이미지가 인간이 헤아릴 수 있는 문법 밖에 있다는 점에서 자연이 선사하는 이미지와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대형 극장에 배급되는 거대 극영화 혹은 영화산업의 판도를 바꾸는 존재로서 AI 이미지가 현현할지는 정말로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 저는 제 작업에 전면적으로 기용할 계획이 전혀 없습니다.
Q5. 로트링겐 행보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외에도 한국영상자료원과 종로 등에서 로트링겐이 참여한 작품을 상영하는 등 영화계에서 비범한 행보를 이어가고 계십니다. 일환 대표님 영화 취향과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중요한 질문이네요. 모든 예술가가 그렇겠지만, 자신이 놓여 있는 환경이 어딘지 고민하고, 그 안에서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야 합니다. 가령, 자본이 풍요롭지 않은 제작 환경에서 실험영화를 공부하고 이에 영감받아 영화를 만드는 것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실험영화의 다른 이름은 ‘개인에 의한’ 영화라고도 생각됩니다. 로트링겐이 현재까지 실험영화라고 불릴 수 있는 작품들을 만들어온 까닭도 유사합니다. 자본 환경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여건에 어울리지 않는 영화를 만들려 시도하면 당연히 결과물이 좋을 수가 없겠죠. 상업 영화 현장을 따라 하며 학생 수준 혹은 개인 수준에서 영화를 제작하려 한다면 너무나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영화를 많이 보아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액체처럼 자신의 환경에 맞게 자신이 희구하는 영화를 변형하여 만들 수 있어야 하고, 그렇기 위해서는 선대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참고되는 법이지요. 영화는 결국 제작비와의 싸움이었으니까요. 저희 로트링겐이 마이너한 취향을 갖고 있다고 많은 분이 생각하시는데, 이는 전적으로 창작에 대한 고민의 결과라고 이해해 주시면 됩니다. 환경에 부합하는 최선의 영화를 사유하며 제작하는 것입니다. 다만 저의 경우, 앞으로는 정형성을 어느 정도 따르는 극영화/다큐멘터리를 만들 계획입니다. 다음 작품도 그렇게 기획하고 있습니다. 물론 형식적으로 진부한 작업이 되지는 않겠죠.
그리고 취향이라는 개념이 말하기가 참 난처한 게, 예술에 관한 취향은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으로 정의된다고 봅니다. 가령 영화의 경우 존 포드, 로베르 브레송, 장 르누아르 같은 고전 거장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정말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진심으로 그렇게 말한다면 그 이유가 너무나 궁금해 듣고자 하는 흥미가 생길 것입니다. 즉, 고전의 모든 요소를 수용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고전은 교본으로서 모든 것이지만, 그것에는 정말로 모든 것, 명과 암이 전부 있을 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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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6. 로트링겐 하면 작년에 시작하신 ABBFF 병영영화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해당 영화제에 대한 소개와 이를 개최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ABBFF 병영영화제’는 로트링겐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입니다. 저희도 제일 사력을 다해서 준비하구요. 전남 강진군 병영면에서 진행하는데, 저희에게 이 영화제가 소중한 이유는 먼저 로트링겐 구성원들이 만든 영화를 공개하는 창구가 됩니다. 그리고 평소에 접할 기회가 없던 여러 시대 좋은 영화들을 관람할 기회를 제공해 주기도 합니다. 작년에는 이장욱 선생님과 제롬 하일러의 작품이 그 범주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파격적인 작품들을 데려오는 것이 목표입니다.
‘ABBFF’라는 이름은 ‘ABBF’라는 양조장에서 따 왔습니다. 본 영화제는 양조장 측에서 주관한 행사인데, 병영이 물이 좋아 전통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최근 청년 인구가 계속 줄면서 병영도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강진군 측에서도 유동 인구를 늘리기 위해 축제를 열고 싶어 했고, 양조장 사장님들께서도 서울에서 계시던 시절부터 문화/예술과 연계된 사업을 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꿈들이 맞물려 화학 반응이 일어났달까요.
구체적인 행사 장소는 ‘전라병영성지’라는 곳인데, 경관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고성 성곽이 둘러싼 벌판이 있고, 밤하늘에는 별이 쏟아집니다. 별이 너무 아름답다고 반응하신 관객분들도 많았어요. 저도 지방 촬영을 정말 많이 다녔지만, 거기만 한 별천지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양조장 탁주는 제가 먹어본 술 중 제일 맛있습니다. 그렇듯 병영 자체가 관광하기 좋은 동네이고, 만약 올해에 방문하시면, 낙원적인 현장을 마주하실 수 있을 겁니다.
영화제 개최에 도움 주신 한 분을 언급하고 싶은데, 박규재 작가님이십니다. 저와 함께 영화제 프로그래머이시기도 한데, 다른 나라의 동시대 영화 예술가들과 친분으로 해외 영화들을 수입하는 데 많은 도움 주셨습니다.
Q7. 이제는 로트링겐이라는 조직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로트링겐을 시작하신 계기와 이름을 ‘로트링겐’으로 정하신 일환 대표님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로트링겐’은 로렌 지역의 독어 독음입니다. 그곳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함에 따라 독일로 할양된 비운의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 역사에 대한 동명의 영화, “로트링겐!”(1994)도 있습니다. 이처럼 저희 팀원들이 대부분 기성 제도의 혜택을 받는 위치에 있지는 않았고, 팀원 대부분도 땅은 필요하지만, 행정적 거처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렇게 명명하게 됐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동명 영화를 만든 장 마리 스트로브, 다니엘 위예 부부 감독을 너무나 좋아해서 그들의 영화 제목 중 하나로 팀명을 짓고 싶은 욕구도 있었습니다. 칠레의 실험영화 감독 프란시스코 로하스가 마이클 스노우의 “중앙지역”(La Région Centrale)으로 본인의 시네클럽을 명명한 것처럼요.
팀 시작 계기는, 그 당시 ‘주변에 어떤 사람들을 두느냐’가 너무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환경에 민감한 예술가들에게 그것보다 주요한 것은 없다고 아직 생각하긴 합니다. ‘좋은 사람’들로 주변을 채워야 하는 거죠. 좁고 깊은 관계로요. 그렇게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우정을 찾아서 2021년에 처음 만들게 되었습니다.
Q8. 반대로 일환 대표님께서 영화를 찍고 싶다고 결정하신 개인적인 계기가 궁금합니다.
-왜 그런 바보 같은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웃음) 사실 어렸을 적부터 예술에 관심이 많아 고등학교 때부터 많은 고전 영화를 접했습니다. ‘영화를 만들어보자’ 라고 결심한 가장 큰 계기는 종로에서 장 마리 스트로브 연출의 “아르테미스의 무릎”(2008)을 감상한 경험이 되겠네요. 그걸 보고 세계가 개벽하는 듯한 엄청난 전율을 느꼈습니다. “영화가 세계의 신성을 드러내는 것에 있어 자본의 규모는 일절 무관하다”는 확신을 재차 얻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창작을 시작했습니다. 로트링겐이라는 이름도 그렇고, 스트로브-위예가 제게 의미가 큽니다. 이 경험을 초석 삼아 여러 실험영화와 민족지학 영화들도 찾아보게 되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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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9. 로트링겐 운영 체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요?
-‘좋은 작품을 만들고, 함께 상영을 기획한다.’ 이 말고는 규정된 체계가 없습니다. 그저 누군가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논의 후 실천합니다. 지나치게 행정적으로 체계화된 예술가 집단은 그들 자신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곧 그 조직은 와해합니다. 자유로워야 하니까요. 만약 처리해야 할 안건이 있다면 단체 회의보다는 즉각적인 1대1 미팅을 선호합니다. ‘자유로움’이 조직을 유지할 수 있는 바탕입니다.
Q10. 다음으로 수익 창출 구조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궁금합니다.
-영화는 무엇보다 자본과 투자가 중요한데, 디지털 환경에서는 거대한 투자 없이도 영화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이에 관한 아이디어는 이미 영화 역사에 나열되어 있구요. 따라서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게 가능한데, 그 안에 투영된 사회적 힘을 믿습니다. 그래서 투자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 팀원들의 영화라는 결과물이 축적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좋은 영화들이 많아지면서 관객에서 선보일 기회가 많아지면 팬이 생기고, 그분들이 우리를 찾아 주신다면 수익 창출 및 자생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존 영화 산업 수익 창출 방식보다는 더 자주적인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좋은 영화를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ABBFF 병영영화제처럼 뜻이 맞는 기업들이 투자를 제안하실 수도 있죠. 저는 투자 자체를 절대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놓인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건전한 것이지 다가올 환경의 변화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더하여, 명쾌히 말할 수는 없지만 몇 명의 팀원들이 모 대기업과 내부적인 계약을 앞두고 있기도 합니다.
Q11. 일환 대표님을 제외한 로트링겐 운영진 또한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 팀원은 누가 뭐래도 영화에 진심입니다. 영화를 보고 만드는 데 가장 큰 목적과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고, 반골 반기 기질이 심합니다. 제도적 장치에 반감을 품는데, 그런 이들끼리 모이니까 어떻게든 조직이 전개되긴 합니다. 따로 약속을 잡지 않아도 중요한 영화 행사에서는 주기적으로 얼굴을 보게 되는 그런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Q12. 만약 조직이 점점 성장하여 그 범위를 넓히고, 새로운 누군가를 고용해야 하는 상황에 다다른다면 대표님께서 사람을 보는 기준이나 인재상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안 그래도 최근 업무량이 많아지면서 행정적인 업무 담당자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조직 인재상은, 모두가 영화에 광적일 필요는 이제 없다고 생각해요. 먼저 의사소통이 잘 돼야겠죠. 의사소통이 원활하고 자신의 작업에 천진난만한 작가라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또 자신이 살면서 품어 온 어떤 명제들이 있잖아요. 가치관과 같은. 그것이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아 확장되거나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피하는 사람은 로트링겐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회피나 부정이 그 예시 아닐까요? 예술가 집단에서는 가치관을 열어 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열어둔다기보다는 거듭 사유하는 것이 옳은 표현이겠네요. 스스로 끊임없이 사유하고, 그 과정에서 타인의 영향을 튕겨내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실험영화라는 카테고리에 있어서, 처음에는 생소할지언정 그걸 탐구하려는 사람과, 피해 버리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전자를 선호합니다. 새로움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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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3. 이번에는 조직 문화에 관해 질문드리려 합니다. 로트링겐이 가진 특별한 조직 문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상하게 들리실 수도 있는데, 정기적인 무언가가 없는 게 저희만의 조직 문화입니다. 그럼 어떻게 그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했는지 의문이 드실 텐데, 간단합니다. 예를 들어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디어가 등장하면 즉흥적으로 회의를 진행하는데, 즉흥적이더라도 조직원 개개인이 서로 꾸준히 소통한다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리더분들께서도 예술가를 슬하에 두었을 때 통제하려 들면 안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또 그들에게 있어서 집단 대담보다는 1대1 미팅이 더 바람직한 소통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무궁무진한 아이디어와 고민을 처음부터 끝까지 상세하게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술가들에게도 작품이라는 결과물을 끌어내야 하는데, 그렇다고 마감 기한과 초기 제안 등을 제외한 과정이나 형식에 제약을 두면 안 됩니다. 그들에게는 자신 작업물이 곧 정체성이기에 기간만 주어지면 그 안에서 사력을 다해 완성할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팀원들을 통제하려다 포기하고 방임했는데, 그러니 오히려 조직 문화가 괜찮아지더라구요.
Q14. 대표님께서 1대1 미팅을 굉장히 강조하시는 듯합니다. 이 외에도 구성원 혹은 팀원과 미팅을 진행할 때 중요시하는 부분이 무엇일까요?
-일단 제가 1대1 미팅을 선호하는 이유가 인간적인 부분을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업무적 미팅이 있을 때도 독대를 선호하는데, 대화하다 보면 속마음을 전부 나눌 수 있죠. 그렇다고 상대 요구 사항을 100% 반영할 수는 없잖아요. 그럴 때 제가 책임자로서 선별하고, 그렇지 않게 된 이들에게 다시 일일이 찾아가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편입니다. 그냥 가장 윤리적인 방향으로 소통하려 했네요. 구성원들이 행복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다만 모두의 행복에 반하는 사람은 조직과 함께하지 못하겠죠.
Q15. 그렇다면 대표님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피드백’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피드백 도중 의견 차이로 물론 싸울 수 있는데, 요즘에는 사람들이 싸우고 화해하는 법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일단 이게 전제되어야 하고, 그 다음 갖고 있는 생각을 솔직히 말해야 합니다. 계산적이면 안 됩니다. 그 덕분인지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조직 내 인간적이거나 감정적 갈등은 전혀 없습니다. 기억은 상대적인 것인지라 다른 팀원의 생각은 모르겠지만요. (웃음) 팀원들이 건의하는 내용을 웬만하면 최대한 반영하려는 쪽으로 진행하기 때문 같습니다.
Q16. 어떻게 인간적인 갈등이 0에 수렴하도록 하셨는지, 그리고 나중에 갈등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이를 극복하실지 궁금합니다.
-만약 문제가 발생했는데, 팀원 대부분이 이를 인지하고 있다면 과감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이게 가장 큰 바탕인데, 앞으로도 정서적 갈등이 없을 거라고 장담하지는 못하겠죠. 하지만 문제 해결 방법은 절대적인 게 아닌 상황에 따른 상대적인 개념이기에 가장 윤리적인 선택지를 따를 듯합니다.
갈등이 일어난다면, 먼저 업무적일 때는 빠르게 선회해서 대안을 찾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예술 사업은 눈앞에 있는 이윤을 보고 진행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협상이 결렬돼도 큰 리스크가 있지는 않습니다. 자본과 관련해서 파괴적인 스트레스도 크게 없구요. 정서적 갈등도 비슷한데, 늘 지켜오던 조직 문화를 유지한다는 전제하에 문제를 처리하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것입니다.
결국 드러나는 스트레스가 없으면 다 수월하게 해결되는 것 같아요. 피로가 있더라도 티를 내지 말아야죠. 그리고 스트레스는 항상 바쁠 때 생기니까 무시하고 열심히 업무에 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희석됩니다. 그럼, 대화로 풀리지 않는 문제도 없구요. 능력도 능력이지만 인간적인 가치들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더 중요합니다.
Q17. 로트링겐을 접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느낄 인상은 ‘다르다’입니다. 현대 문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정서가 로트링겐이라는 조직에 깃들어있는 듯한데요, 이런 독보적인 조직 정서가 어떻게 자리 잡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저희는 남들과 다르기 위해 무언가를 하지는 않습니다. 말씀드렸듯이 로트링겐은 그들 자신이 좋아하면서 할 수 있는 부분을 개척해 나가는 집단인데, 주류에 대한 안티 체제적으로 무언가에 접근한 적은 정말 한 번도 없어요. 논박 대신 제가 좋아하는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동시대성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이 저희를 제일 잘 설명해 주지 않을까 싶어요. 너무나 사랑스러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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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8. 이 외에도 로트링겐이 내세울 수 있는 강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가장 큰 장점은 저희가 만든 영화입니다. 영화가 공개될 수 있는 창구가 늘어나면 영향력도 더 커지리라 믿습니다. 영화를 만들어서 위인이 되거나 돈을 벌겠다는 목표가 아닌 그저 영화를 보고, 만들기 좋아하는 이가 만드는 작업은 그 진정성이 관객에게 전해질 것이라 예상해 봅니다.
또 큰 특징으로 ‘급진성’을 꼽고 싶습니다. 고전을 포함한 영화사의 무수한 영화들을 향한 저희의 열렬한 관심이 급진성으로 직결된다고 봅니다. “급진적이라는 것은 사물의 근원부터 파악하는 것”이라는 어느 철학자의 유명한 문장처럼요. 모방이 아닌 흡수를 통해 새로운 영화를 꿈꾸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이렇게 말한 내용이 팀원 결과물을 가두어 버릴까 봐 걱정될 따름이네요.
Q19. 이번 질문부터는 로트링겐 미래에 관한 질문입니다. 로트링겐이 가진 문화적 파급력이 얼마나 큰 잠재력을 내포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그것이 로트링겐에 어떤 경제적, 비경제적 성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일단 경제적 측면은 언급하지 못할 듯합니다. 아니 안 하는 게 맞습니다. 목표를 명확히 규정하는 예술가 집단은 위험합니다. 스스로를 거기 가두기 때문이죠. 비경제적 성과에서 의도치 않게 따라오는 경제적 파급 정도가 적당하고, 비경제적 성과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좀 많은 이들한테 원한을 살 수 있는 말인데, 저는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한국 영화들에게서 많이 절망을 느낍니다. 업계에 그런 영화들만 상영된다면 영화도 그렇지만 파생되는 비평 담론 또한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과물이 전형적이니까요. 전체적으로 경화되어 있다는 느낌입니다.
결국 새로움이 필요한데, 저희는 디지털 세대이고, 다양한 예술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좋은 결과물을 많이 만들고, 어떠한 경로로든 대중들에게 노출할 기회가 주어지면 그 영향으로 다른 다양한 영화와 비평을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비단 영화 예술만의 문제가 아닌데, 이렇게 근원적으로 보다 다양한 작품이 나오도록 하는 영향력이 저희가 지향하고, 또 이끌고자 하는 비경제적 파급입니다. 요약하면 예술계에 새로움을 부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Q20. 영화 말고도 파티와 전시를 개최하고, 인문학 스터디를 진행하시는 등 영화를 벗어나 전방위적으로 활동하시는 모습을 여럿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로트링겐이 지향하는 지점은 영화에 있는지, 혹은 그 너머까지 나아가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사실 영화 말고는 무언가를 만드는 데 큰 관심은 없습니다. 다만 영화만으로는 영화를 만들지 못하기도 하고, 주변에 유능한 인재들이 많아 그런 프로젝트가 기획되는 듯합니다. 저희가 ‘문화’를 만들려는 건 아닙니다.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가 “문화는 규칙이고 예술은 예외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로트링겐 최종 목표는 ‘규칙’이 아닙니다. 스스로의 행보를 계속해서 경계하는 거죠.
그렇다고 영화 이외 분야를 마다하겠다는 뜻도 아닙니다. 시대가 변화하는 만큼 영화가 꼭 극장이라는 공간에서만 틀어야 할 이유가 없듯이 말이죠. 단지 열심히 작업하고, 그 결과물이 누군가의 마음을 얻어 협업을 제안하면 승낙하면 될 뿐입니다. 즉 영화를 만드는 일 이외에 파생되는 파급 마다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 파급을 노리고 작업하면 안 됩니다. 요행을 바라는 태도는 지양해야 합니다. 결국 제일 중요한 건 ‘태도’입니다.
요즘 영화계 풍토 또한 영화를 확장하려는 담론이 지배적이고, 그 일례로 영화를 미술관에서 전시하듯 상영하는, 이른바 ‘미술관 영화’도 대중 앞에 선보인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전형이 생겼을 정도로 영화 예술 내 새로운 시도가 자행되고 있습니다. 저희도 그 흐름에 일조하는 것을 고무적으로 보고 있고, 마다할 이유도 없습니다. 전형성을 활용할 고안을 해나가며, 뒤에 따라오는 새로운 무언가를 거부하지는 않겠다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또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나면 좋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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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1. 꼭 영화 부문이 아니더라도, 일환 대표님처럼 젊은 나이에 사업을 추진하고자 하는 미래 리더들에게 자신만의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제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조언하기가 망설여지네요. 그럼에도 전해 드리자면, 말씀드렸듯이 요즘에는 화해하고 용서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먼저 화해하고 용서하는 소통 과정이 일상화되기를 바랍니다. 화해와 용서가 없으면 싸우려는 시도조차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가 회피를 굉장히 싫어하는데, 갈등과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화해하고 용서하면서 더 나은 길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Q22. 향후 일환 대표님과 로트링겐의 계획과 비전을 알고 싶습니다.
-단기적인 계획은 말씀드린 대로 더 큰 제작 규모에서 유구함을 망각하지 않은 극영화를 만드는 게 올해 목표입니다. 그리고 팀원이 만든 영화로만 구성된 정기 상영회를 주기적으로 개최해서 팬층을 확보하고 싶어요. 궁극적으로 그렇게 영화를 계속 만들고, 팬을 유치하면서 영화 제작만으로 삶을 살아 나가고 싶습니다. 대성한 감독이 되거나 부피를 키우는 게 아닌, 영화를 만들고 상영하는 순환을 유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자리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교육자가 되고 싶습니다. 저는 평생을 교육 체계 안에서 고통받아 왔고, 현재 국내 대부분 사회, 정치적 문제 근원이 교육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정화할 수 있는 예술 교육 방안을 창시하고 싶습니다.
Q23. 인터뷰가 끝나기 전, 그래도 영화 추천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영자들 혹은 리더들에게 어울리고, 그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영화를 추천 부탁드립니다.
-찰리 채플린 <뉴욕의 왕>, 존 포드 <태양은 밝게 빛난다>, 그리고 파트리시오 구스만 <칠레 전투> 3부작 추천해 드립니다. 앞의 두 편은 할리우드 상업영화이고, 마지막 한 편은 다큐멘터리입니다. (푸코의 정의를 빌려) ‘도덕’ 대신 ‘윤리’를 중시하는 할리우드 영화 두 편이, 정치적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지를 잊지 않도록 알려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곳에는 화해와 용서 혹은 이해와 배려가 있겠죠.
마지막 <칠레 전투> 3부작은 많이 생소하실 텐데요, 이 영화를 통해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던 요소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고 사유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언급했습니다. 제3세계 국가 큰 갈등 중 하나에 관하여 생생한 증언을 듣고, 한국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무언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모습을 바라보시면서 새로움을 창출하는 상상력을 발휘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Q24. 마지막으로 사례뉴스 주 독자층인 경영자와 리더들에게 응원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는 예술가로서 정체성이 더 큰 사람이라고 스스로 여기고 있고, 아직 경영자로서는 부족한 면이 많습니다. 그런데 로트링겐의 비전을 듣고 인터뷰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또 제가 하는 일도 수익이나 성과보다는 하고자 하는 일 자체에 집중하기 때문에 진심에 충실하면 후회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리더분들께서 하시는 진정성 있는 모든 행보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응원 한 마디 남깁니다. 진정성 있는 모든 일에 실패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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