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신광훈 기자
절박함이 빠진 부지런함
나는 한국에서도, 캐나다에서도 출근이 빠른 편이었다. 아무도 없는 아침 근무 1시간은,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낮 근무시간으로 볼 때 3-4시간에 해당하는 효율을 자랑한다.
로스쿨 학생으로 오타와에 있는 지적재산권 로펌에서 여름 방학에 인턴을 할 때에도, 내 업무 처리 속도가 느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6시에 나가서 일을 시작했다. 떨어지는 속도를 만회하려면 더 부지런한 수 밖에는 없다.
내가 일하던 지적 재산권 로펌은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에 있었다. 토론토도 그렇지만, 오타와는 자기 집이 없는 노숙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캐나다의 수도라서 그런지 노숙자가 머물 시설도 많고 의식주에 대한 지원도 풍부해서 의식주 해결은 기본이고 겨울에는 양말이며 내복까지 지원이 된다고 들었다. 오타와의 지원이 얼마나 좋은지 토론토 노숙자들의 꿈이 오타와로 옮겨오는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내가 6시에 로펌에 출근을 해도 항상 나보다 먼저 회사 건물 앞에 나와서 구걸을 하는 노숙자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여름이었으니, 6시면 날도 밝고 춥지도 않기는 하다. 하지만, 그 시간에는 나 말고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길거리에서 혼자 구걸을 하면 이른 아침 시간을 투자한 것 치고는 시간 대비 효용이 너무 떨어지지 않는가. 노숙자인데도 그렇게 부지런하시다니. 나름 감동받은 나는 가능하면 아침마다 잔돈을 준비해서 드리려고 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12시에 점심을 먹으러 나갈 때에 보면 이미 그 노숙자 분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한참 사람이 많아 사실 아침 시간보다 훨씬 구걸의 효율이 좋을텐데, 이 황금시간대가 되기 전에 일종의 “퇴근”을 하는 것이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더 장소가 좋은 곳으로 간 것일까. 하지만, 처음 있던 자리가 푸드코트 앞이라 더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동료들에게 이야기하니, 오타와에 사는 동료가 말하기를, 자기 생각에 다른 도시의 노숙자에 비해 오타와의 노숙자는 절박하지 않다고 했다. 구걸을 전혀 하지 않고도 사는 데에 불편이 없기 때문에 굳이 구걸을 할 이유도 없으니, 부지런하게 아침 일찍 나오는 것이 신기한 일이지 열심히 구걸하지 않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오타와에 노숙자는 적지 않았지만, 얼굴이 어두운 사람들은 없었다. 토론토 다운타운에 가면 차가 빨간 불에 서 있을 때 갑자기 다가와 요구하지도 않은 차 유리 청소를 잽싸게 하고는 돈을 달라는 사람들이 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오타와에서는 그럼 열심을 볼 수는 없었다.
동료의 말을 듣고 예전에 함께 일하던 독일인 보스가 해 준 일화를 생각났더랬다.
자기가 어렸을 적 자라던 마을에 한국인 한 명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단다. 이 한국인은 시계수리를 했는데, 처음에는 당연히 가게에 손님이 없었다.

일단 그 마을 사람들은 시계에 대한 한, 독일 장인에 대한 믿음이 더 컸다. 그리고 아무래도 작은 마을에서 함께 살아온 독일 사람이 운영하는 시계방에만 가게 되지, 타지에서 온, 그것도 외국인임이 확실한, 동양인 시계 수리공의 가게에 가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이 한국인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문을 열었고 주말이나 휴일에도 문을 닫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보통 평일에도 5시만 넘으면 사무실이나 가게 문을 닫아, 몇몇 음식점을 제외하면 저녁에 불 켜놓은 곳이 별로 없던 도시고 또 대부분의 다른 독일 도시도 상황이 마찬가지였던 시대였기 때문에 시계방에 고객이 있을 것 같지 않은데도, 그 한국인은 꾸준히 문을 열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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