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김호이 CEO, 중학생 때부터 1,000명 접촉…400여 명 이상 인터뷰 진행
인터뷰 전문 콘텐츠 회사 ‘김호이의 사람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전하는 곳!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 인터뷰를 창업 아이템으로 선택
김호이 CEO “사람들의 물음표를 느낌표로 만들어 주고 싶다”
인터뷰는 ‘인생을 터닝포인트로 만들어 준 뷰티플 라이프’ 기자는 ‘나를 세상과 연결시켜준 도구’
김호이 CEO “지금 안된다고 해서 나중에 안되는 건 없다! 일단 끝까지 해보자”
행복은 아이스크림 와도 같다…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녹아버린다 생각
이젠 취향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 진짜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아야 한다
인터뷰 전문 콘텐츠 회사 ‘김호이의 사람들’ 발로 뛰는 CEO이자 아주경제신문 기자 김호이 CEO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전문 콘텐츠 회사 ‘김호이의 사람들’은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닌 자신이 진짜 좋아서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인터뷰 콘텐츠 회사다.
김호이 CEO는 중학교 1학년 선생님의 추천으로 학생기자 활동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는 걸 좋아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인터뷰를 시작하게 됐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연예, 사회, 예술, 미디어 등 분야를 넘나들며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터뷰로 전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는 세계적인 투자자 짐 로저스 회장을 비롯해 가수 인순이, 배우 권상우, 이준익 감독 등 400여 명 이상의 사람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중학생 시절부터 현재 인터뷰 전문 콘텐츠 회사 ‘김호이의 사람들’ 발로 뛰는 CEO 이자 아주경제신문 기자가 되기까지 그가 겪은 일들과 스토리들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발로 뛰는 김호이 CEO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Q. 인터뷰 전문 콘텐츠 회사 ‘김호이의 사람들’과 본인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인터뷰 전문 콘텐츠 회사 ‘김호이의 사람들’은 말 그대로 여러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그분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인터뷰 콘텐츠 전문 회사다. 저는 현재 아주경제신문 객원기자로 활동 중에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의 추천으로 학생기자단 활동을 하게 됐고 중학교 2학년 때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는 마음을 먹고 인터뷰를 시작해 지금까지 약 400명 정도 인터뷰를 하게 됐다.
김호이라는 이름의 뜻은 넓고 푸를 ‘호’에 이로울 ‘이’다. 참고로 둘리 작가님도 인터뷰를 진행했었다. (웃음)
Q. 지난 2017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정식으로 ‘김호이의 사람들’ 이라는 인터뷰 전문 콘텐츠 회사를 창업하게 되었는데 창업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중학교 때 기자단 활동을 하면서 창업 행사를 많이 다니게 됐다. 2013년엔 창조경제 박람회를 갔었고 2014년엔 드림 엔터 취재를 가면서 창업가분들을 만나 창업의 꿈을 키웠다.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고 인터뷰를 창업 아이템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어 인터뷰 전문 콘텐츠 회사 ‘김호이의 사람들’을 창업하게 됐다.
Q. ‘나만의 콘텐츠’로 창업을 시작하게 된 방법은 무엇입니까?
현재는 아주경제신문 객원기자로 활동하면서 인터뷰를 공식적으로 올릴 수 있는 채널이 있는데 그전엔 페이스북 채널을 활용해 인터뷰 기사들을 올렸었다. 고등학교 1학년 초반까지는 여러 채널에 그간 인터뷰했던 인터뷰 기사들을 올려 콘텐츠들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Q. 어떤 가치로 ‘김호이의 사람들’ 회사를 운영하고 계십니까?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데 바빠서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물음표를 느낌표로 만들어 주고 싶다.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것들도 많이 물어보는 편이다. 팬 단톡방 같은 곳에 물어봐서 질문도 수집한다. 밝고 명량하고 호기심이 많아 보이는 인터뷰이, 궁금한 게 많아 보이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Q. 처음 기자 생활을 중학교 때 하셨는데 그 당시에 시험기간 전날에도 인터뷰를 다니셨다고 들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고 안 좋은 시선들도 많이 받았는데 그럼에도 인터뷰를 계속하러 다니신 이유가 있으십니까?
인터뷰를 하면 가슴이 뛰었기 때문에 안 좋은 시선들을 받아도 계속할 수 있었다. 취재 기회가 왔을 때 최대한 가려고 하는 편이다. 취재 같은 경우 그때 가야지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취재 일정이 잡히면 우선순위를 두고 간다.
기억에 남는 일화 하나를 이야기해 주자면, 초등학생 때부터 가수 인순이 씨의 ‘거위의 꿈’을 좋아했다.
인순이 씨를 인터뷰하고 싶어 무작정 페이스북 댓글로 인터뷰 요청을 드렸었다. 당시 가수 인순이 씨가 제 댓글을 보시고 함께 토크 콘서트를 하자고 제안해 주셔서 토크 콘서트도 진행하고 인터뷰도 할 수 있었다.
사실 그때 일정이 학교 시험 하루 전날이었고, 장소도 강원도 홍천이었는데 나중으로 미루게 되면 이런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 몰라 홍천까지 가서 토크 콘서트와 인터뷰를 함께 진행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인연으로 지금도 자주 연락하는 사이가 됐다.
황우석 박사님도 중학교 2학년 때 인터뷰를 진행했었는데 당시 12월 추운 날씨였는데 직원분께 부탁을 드려 역까지 데려다주셔서 기억에 남는다.
Q.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약 1,000명에게 인터뷰 컨택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중 400여 명과 인터뷰를 진행했고 약 600여 명에게 인터뷰 거절을 당하셨는데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는 비결이 있으십니까?
내가 해야 할 일과 상대가 해야 할 일을 명확히 구분한다. 인터뷰 요청을 하는 건 나의 할 일이다. 저는 제가 해야 될 일을 하는 것뿐이다. 지금 당장 인터뷰가 안된다고 하면 2~3개월 뒤에 다시 인터뷰 요청을 드리면 된다. 거절부터 할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되고 인터뷰 요청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Q. 베르나르 베르베르, 오롤리데이 박신후 대표, 오은영 박사, 권상우, 이지선 교수, 이지영 강사 등등 직업 불문하고 여러 다양한 사람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인터뷰 섭외 노하우와 비결은 무엇입니까?
홈페이지에 있는 이메일이나 전화로 컨택을 할 때 답장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인스타그램 DM이나 댓글로 인터뷰 요청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
장성규 아나운서분께도 댓글로 인터뷰 요청을 드렸는데 연락이 바로 오셨다. 출판사에 전화해서 인터뷰를 요청하는 방법도 있다. 인터뷰 컨택을 많이 하면서 방법과 노하우들을 터득해나갔다.
Q. 인터뷰 이후에 시간 영수증에 사인을 하고 기록으로 남겨 놓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시간 영수증이라는 아이디어가 신박한데 어떻게 생각하게 되셨습니까?
영수증을 만들 수 있는 기계가 올해 초에 있었는데 어떻게 사용할까 고민을 하다가 인터뷰했던 분들을 기억하면 좋을 것 같아서 시간 영수증을 만들게 됐다. 기계에다가 메모를 하면 프린트가 된다. 기계는 시중에 팔고 양식은 스스로 만들면 된다. 메모지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만들게 됐다.
시간 영수증은 뽑은 이후 영수증처럼 글씨가 날아가고 나중엔 사인만 남는다. 함께 했던 시간은 영원토록 오래간다. 나중에 전시나 책을 내려고 계획하고 있다.
Q. 인터뷰 섭외 기준이 직접 만나면 가슴 뛰는 사람들이라고 하셨는데 향후 또 인터뷰하고 싶으신 분들이 있다면 누구입니까?
유재석, 김연아, 마크 저크버크, 빌 게이츠, 오프라 윈프리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다. 이분 들은 꼭 인터뷰해 보고 싶다.
Q. 인터뷰를 ‘인생을 터닝포인트로 만들어 준 뷰티불라이프’라고 정의를 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대표님에게 기자는 무엇이라고 정의하십니까?
기자는 나를 세상과 연결시켜준 도구다. 기자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많은 분들을 만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Q.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결국 이뤄내셨는데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지금 안된다고 해서 나중에 안되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포기하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니까 ‘일단 끝까지 해보자’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산다.
Q. 인터뷰 중 어떤 어려움들이 있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인터뷰를 하러 양주까지 갔는데 연락이 안 됐었던 경우가 있었다 당시 굉장히 허탈했다. 공부의 신 강성태 대표님 강연을 듣고 인터뷰 요청을 하고 싶어 대기실에 찾아갔었는데 이미 회사로 가셨다고 하셔서 회사로 연락을 했는데 전화를 안 받아서 회사로 간 적이 있다. 회사에 갔는데 안에서 만날 수 없다고 해서 회사 밖에서 2시간을 기다렸다.
강성태 대표님께서 나오셔서 무작정 이렇게 기다리면 어떡하냐고 하시면서 음료수와 책을 줬던 기억이 있다. 결국 인터뷰는 못했지만 3년이 지나고 나서 강연을 또 들으러 갔는데 강성태 대표님께서 저를 기억해 주셨고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했다고 말하더라. 그리고 이 열정을 계속 이어나가라고 말씀해 주셨다.
Q. 지금 이 순간 행복한 게 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멋진 말인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분들, 꿈을 찾는 분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행복은 진짜 아이스크림 같아서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녹아버린다고 생각한다. 대학 가고 취업하고 애 낳아서 은퇴 후로 늘 행복을 미루는데 우리의 삶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 행복을 계속 미루다가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냐? 지금 행복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엔 인터뷰를 하고 취재를 하면서 삶의 보물들을 찾았다. 보물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라 생각한다. 꿈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지금 초등학교에선 유튜버가 꿈인 사람들이 많고 전에는 장래희망 1위가 선생님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선생님만 봐와서 그런 거라 생각한다. 안정적인 것도 좋지만 내가 진짜 가슴 뛰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뭐든 많이 경험을 해야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다.
Q. 앞으로의 시대는 나만의 브랜딩이 있는 사람이 살아남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나만의 브랜딩을 찾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될까요?
진짜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아야 한다. 이제는 취향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됐다. 지금 당장 내가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하는 것들을 프로페셔널하게 보여줘야 한다. 요즘은 퍼스널 브랜딩의 시대다.
Q. 세계적인 인터뷰어가 되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 아직도 그 꿈에 변함이 없으십니까? 대표님의 현재 향후 목표는 무엇이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가 되서 세계적인 인터뷰어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나만 행복한 게 아니라 나를 통해 다른 사람들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글/ 이예지 기자, 권한성 학생기자